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하는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회화’에 막바지 손님이 몰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양국 유일의 국가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이 소장한 대표 근현대 수묵채색화를 통해 20세기 들어 현재까지 120여년에 걸친 수묵화의 변천사를 조망하는 전시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안중식(1861∼1919)부터 1960~7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이상범(1897∼1972), 변관식(1899∼1976), 이응노(1904∼1989), 천경자(1924∼2015), 80년대 현대 수묵화를 연 황창배(1947∼2011), 박대성(1945~) 등 69명의 작품 74점이 나왔다. 중국도 우창숴(吳昌碩, 1844∼1927), 푸파오스(傅抱石, 1904∼1965), 쉬베이훙(徐悲鴻, 1895∼1953), 치바이스(齊白石, 1860∼1957) 등 76명의 작품 74점이 나왔다.
전시는 양국 근현대 수묵화 역사를 각각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신으로 나눠 조명하는 등 총 4부로 구성됐다. 한국은 올림픽이 열린 80년대,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인 90년대가 전환기로 해석됐다.
아무래도 수묵화 애호가들의 관심은 수묵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수묵화의 혁신이 일어났던 19세기 말∼20세기 초반 거장들의 작품에 쏠린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우창숴의 ‘구슬’(1920), 쉬베이훙의 ‘전마(戰馬)’(1942), 치바이스의 ‘연꽃과 원앙’(1955) 등 중국 국가문물국이 규정한 1∼3급 총 32점의 문물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작품은 생각보다 크기가 작고, 작가별로 출품작이 1∼3점으로 소량이다 보니 중국 회화 특유의 스케일을 기대했다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66년부터 모택동이 10년에 걸쳐 주도한 문화대혁명은 중국 회화사에서도 굴절과 좌절, 변신을 낳은 변곡점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부각이 덜 돼 아쉽다. 그나마 항아리에 갇힌 지식인이 항아리가 깨진 후에도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지식인의 좌절을 은유한 랴오빙슝(1915∼2006)의 ‘자조’(1979)가 문화대혁명의 그늘을 시사한다.
리커란(李可染, 1907∼1989)의 경우 문화대혁명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통의 문인화 방식을 버리고 송나라의 사실주의 산수화와 대중적인 판화 기법을 접목한 거대한 검은 산수화에서 답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용수와 물소’(1962, 69.2×46㎝)는 그런 스케일을 맛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의 영향을 받아 대작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한국 작가 박대성의 ‘금강전도’(2000, 134×169㎝)가 오히려 더 크다.
“서양화로 중국을 윤택하게 한다”는 평을 듣는 쉬베이훙이 사실주의 기법을 접목해 전투마를 그린 ‘전마’(1942, 110.5×61.3㎝) 역시 운보 김기창(1913∼2001)의 병풍 그림 ‘군마’(1955, 205×409.2㎝)에 비하면 왜소하다. 이런 이유로 비슷한 시기 한국 작가들의 작품 스케일이 더 커지고 돋보이는 기현상도 일어난다. 가로 4m에 가까운 최석환(1808∼1883)의 ‘묵포도도’ 등 병풍 그림이 많이 나온 게 이런 느낌을 배가시킨다.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미덕이 더 크다. 양국 합쳐 145명의 총 148점이 쏟아진 물량공세 덕분에 대가에 한정하지 않고 양국 수묵화 변천사에 크고 작은 족적을 남긴 이들을 고루고루 맛보게 하는 이점이 있다. 중국의 경우 한국에서는 드물게 사회주의 건설에 복무하는 수묵화를 볼 수 있고, 다양한 소수 민족의 그림도 나왔다. 이를 통해 중국미술관의 컬렉션 성격을 유추하며 중국 수묵화의 전반적인 경향을 조망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서양화 화단에서 일어난 앵포르멜, 기하학적 추상, 모노크롬 회화, 포스트모더니즘 경향 미술에 반응해 수묵화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일어난 다양한 혁신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수묵화의 현대적 변용을 소개하는 각국의 2부에서는 중국의 경우 여전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고수하며 단조롭게 전개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자유롭고 혁신적인 노력들이 보다 활발히 일어난 사실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많은 작가들이 참여함으로써 걸작의 향기가 희석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 수묵화를 총론적으로 비교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다음이 더 기대되는 전시다. 16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