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아’가 비대한 사람이다. 세상은 트럼프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에게 친근했던 인사라면 독재자라도 온갖 미사여구로 칭찬하고, 그를 냉대했다면 동맹의 정상이라도 잊지 않고 보복한다. 트럼프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스마트 가이’지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그저 미국의 ‘51번째 주지사’다. 그래서 트럼프와 잘 지내려면 아첨의 기술이 필요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공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를 향해 “엄청난 협상가, 미국의 황금기가 시작됐다”고 아첨했다. 국익을 사수해야 할 국가 정상은 기업가보다 한 단계 높은 아첨의 외교가 필요하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부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까지 많은 해외 정상이 트럼프를 띄우고 비위를 맞춰줬다. 프랑스 속담처럼 ‘아첨은 외교의 윤활유’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트럼프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한 것도 한·미 관계의 윤활을 위한 아첨일 것이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점 등을 들어 노벨위원회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 최강 동맹국 정상과 잘 지내서 나쁠 것은 없다. 트럼프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도 노벨상 수상이다. 하지만 지금 2025년 시점에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가 노벨평화상 ‘추천 사유’라는 건 들어주기 민망한 아첨이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비핵화가 아니라 핵 기술 고도화라는 정반대의 길로 돌진했다.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하며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트럼프도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불렀다. 백악관이 최근 “트럼프 1기처럼 북한 비핵화에 나서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언제 어떻게 북한을 비핵화할지 로드맵은 아직 없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개인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언제든지 대화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 대화의 결론이 한국이 원하는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이 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북핵 위협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한국의 야당이,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는 북핵을 눈앞에 두고도 비핵화 ‘노력’을 노벨평화상 추천 이유로 드는 건 현실부정이다. 노벨상이 실패로 끝난 과거의 노력에 수여하는 노력상인가.
트럼프를 향한 민주당의 과잉 아첨에는 ‘제 발 저린’ 외교적 맥락이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한·미·일 협력에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초안에 ‘가치외교’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했다고 적었다가 워싱턴 조야의 부정적 반응이 쏟아지자 삭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3월 “왜 중국에 집적거리냐. 그냥 셰셰(고맙다는 중국어).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이 대표는 2023년 당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대중외교에 대한 무례한 일장훈시를 15분간 들었다.
민주당이 아첨 중인 트럼프의 외교정책 최우선 순위는 중국 견제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은 중국을 그냥 중국이라고도 부르지 않고, ‘중국 공산당’이라고 한다.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동원해 현상 변경에 나설 경우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만 방어에 차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해협 문제는 한국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인 셈이다. ‘공산당’과 ‘셰셰해야 할 중국’ 사이, 드넓은 인식의 간격을 메우려는 얄팍한 시도가 노벨상 추천이다. 셰셰와 노벨상 사이를 널뛰기하는 외교는 실용외교가 아니라 국내정치용, 대선용 외교다. 중국에 ‘셰셰’를 하자던 한국 야당이 노벨상 후보로 자신을 추천했다는 소식에 트럼프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임성수 워싱턴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