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유니버설디자인’이라는 명칭을 가진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법안처럼 보이지만 교계는 해당 법안이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교계 “유니버설 법안 악용 우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 외 11인이 지난달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디자인 기본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성별 연령 국적 또는 장애의 유무 등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 및 생활환경을 계획, 조성, 운영 또는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되는 범위 중에는 ‘공간 및 시설의 접근 이용’도 포함됐다.
교계에선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와 지자체가 유니버설디자인이라는 명목하에 성중립 화장실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중립 화장실은 동성애자 등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서울시의 제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 공청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길원평 한동대 석좌교수는 “기본계획 추진과제 세부 내용을 보면 ‘장애 없는 도시공간-유니버설디자인 조성’ 항목에서 두 번째 사업계획으로 공공시설 내 모두를 위한 화장실 시범운영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성중립 화장실 사례를 들면서 서울시 공공시설에 성중립 화장실을 시범 설치해 운영할 계획을 기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추후에 나온 제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에는 성중립 화장실 내용이 빠졌다.
일부서 성중립 화장실 선봬
국내에서는 이미 성중립 화장실이 대중에게 선보였거나 현재도 선보이는 곳이 있다. 대학가가 대표적이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와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등이다. 해당 학교에 있는 성중립 화장실 명칭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다.
성공회대 측은 “이 화장실은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면서 “성 정체성 때문에 기존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 등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겪는 사람은 소수일지라도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성별이 다른 보호자의 도움으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2021년 ‘제1회 서울 유니버설 디자인 대상’에서 공공부문 대상을 받은 서울 동작구 ‘스페이스 살림’은 당시 성별 구분 없이 사용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인 ‘모두의 화장실’과 성별 구분 없는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했다. 현재는 모두의 화장실을 없앤 상태다.
“창조질서 위배, 범죄 발생 가능성”
유니버설디자인 법안이 사실상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효성 명지대학교 법무행정학과 객원교수는 “유니버설디자인이라는 법안 이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상 동성애를 인정한다는 의도도 내포돼 있다”면서 “교계는 종교적 차원에서 문제 되는 부분에 대한 시정 요구를 지속해서 해야 한다”고 전했다.
성중립 화장실이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용희 가천대 교수는 “이런 화장실이 설치되면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채 스스로가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과 생물학적인 남성이 여성들과 같이 화장실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면서 “성폭행 범죄 발생 등 여성의 안전권과 사생활 권리가 침해당할 위험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 런던에 있는 한 중학교 성중립 화장실에서 성폭행 사례가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우려로 인해 성중립 화장실을 철회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미국 유타주 한 고등학교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추진했다가 학부모와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철회했다. 오하이오나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는 잇따른 항의로 이미 만들어진 성중립 화장실이 폐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대회장 오정호 목사) 등을 중심으로 해당 법안을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국회 앞 회견이나 1인 시위 등도 계획 중이다. 거룩한방파제 관계자는 “교인들이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게 느꼈지만, 시간이 갈수록 법안의 폐해를 직시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서 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경식 유경진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