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양 HBM이 정답 아니었나… 복잡해진 반도체 전략

입력 2025-02-04 01:24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내놓은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 기술은 반도체 업계도 긴장시키고 있다. 비싼 반도체를 써야 고성능 AI 개발이 가능하다는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고사양 메모리 양산에 힘을 쏟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딥시크 충격’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딥시크의 최신 AI 모델에 들어간 총 개발비가 아직 불투명한 만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1일 콘퍼런스 콜에서 딥시크 관련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업계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고성능 칩 개발에 집중해왔다. AI 열풍 이후 수요가 급증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의 핵심 부품이 HBM이기 때문이다. AI 전용 GPU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에 비싼 HBM을 납품하는 게 사업의 관건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딥시크가 지난 20일 공개한 추론 모델 ‘딥시크-R1’은 저사양 HBM으로 고성능 AI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딥시크의 전문가 혼합(특정 작업에 필요한 데이터를 선택해 활용하는 기법) 등 자체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해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보고서에서 “딥시크는 효율적인 소프트웨어가 GPU 등 하드웨어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AI 인프라 투자 관련 엄격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은 딥시크를 메모리 기업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1일 주가가 9.86% 급락한 데 이어, 이날은 관세 전쟁 우려와도 겹치며 4.17% 하락했다. 삼성전자 주가도 하락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딥시크의 부상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딥시크가 HBM 등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비교적 저가인 HBM도 국내 기업이 주력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딥시크가 자사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려면 HBM 성능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며 결국 고성능 HBM 수요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박 교수는 “만약 중국 업체의 HBM 기술력이 빠르게 올라온다면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