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장 잠식 경계, 실리 추구 양수겸장 필요”

입력 2025-02-04 01:12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중국 자본이 깊이 뿌리를 내린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한 데 있다. 중국으로부터 전략적으로 취할 건 취하되 시장 잠식을 경계하면서 실리적인 외교·통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중 기업 간 ‘적과의 동침’이 이어지는 건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는 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기업이 중국과 손잡는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한 것”이라며 “중국이 여러 밸류체인(공급망)에서 한국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조인트벤처 등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도 “중국은 21세기 첨단산업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장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협력 관계는 종국에는 국내 산업계를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박 교수는 “배터리·석유화학 등 다방면에서 한국이 중국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때 단기적으로는 투자금 유입 등으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지 못하고 잠식될 것”이라며 “지금은 이러한 국내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선포한 상황에서 박 교수는 한·중 협업이 향후 우회 수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을 우회 경로로 활용한 중국을 언제든지 이슈화할 수 있다”며 “이를 빌미로 한국 제품에도 관세를 부과할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산 제품을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택갈이’ 수법을 실리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싱가포르 전략을 모델로 삼으라는 취지다. 싱가포르는 개방적인 무역 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한국도 싱가포르처럼 자본과 기술을 적극 유치해 현지 생산과 고용을 창출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중국의 투자와 기술을 받아들여서 한국에서 생산하고 고용 창출도 가능하게끔 할 수 있다”며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중국의 기술을 가져올 수 있다면 한국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는 실용을 앞세운 통상 정책을 강조했다. 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중국을 막으려는 건 미·중 패권 전쟁의 문제지 무역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우회 수출에 대해 제재를 할 수는 있어도 한국 기업의 제품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리는 식으로는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처럼 미국이 대규모 양산 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산업의 경우 중국을 제재한다는 이유로 한국에까지 패널티를 주면 미국도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는 논리다. 그는 “무조건 미국 편을 들거나 무조건 중국 편을 드는 게 아니라 현명하게 사안별로 실용적으로 대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강점이 있는 반도체 등의 핵심 산업에 대해서는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 주 교수는 “대한민국이 기댈 수 있는 건 기술 경쟁력밖에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핵심 산업 연구·개발(R&D) 투자를 집중해 세계적으로 기술 혁신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