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중국에 이은 ‘관세 폭탄’ 대상으로 유럽연합(EU)을 정조준했다. EU는 “부당한 관세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보편관세에 따른 내수 타격 관련 질문을 받고 “단기적으로 약간의 고통을 겪을 수 있겠지만 국민은 이해할 것”이라며 “미국은 사실상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돈을 뜯기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는데 우리는 이를 바꾸겠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수년간 모두를 도왔지만 나는 그들이 고마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의약품 등 여러 제품을 보면 다른 나라의 가격이 우리보다 저렴하다. 이를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기자들이 EU와 영국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영국도 그렇지만 EU는 심각하게 선을 넘었다. EU가 (미국에) 한 일은 정말 끔찍하다”며 “EU는 미국산 자동차와 농산물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수백만대의 자동차와 막대한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EU와의 무역에서) 3500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다. 그래서 분명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EU에 대한 관세 부과 시점과 관련해 “시간표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곧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영국에 대해선 “영국도 선을 넘었지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며 비교적 온건한 자세를 취했다. 영국보다는 EU 회원국에 대한 관세 부과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CNN은 “EU가 미국산 자동차와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는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CNN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에 12억 달러어치의 농산물을, 2022년엔 27만1476대의 자동차를 EU에 수출했다.
EU와 관련해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폈음에도 트럼프가 관세 폭탄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EU의 반도체·철강·석유·천연가스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 사흘 만인 지난달 23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EU는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한다. 우리의 농산물과 자동차를 사지 않으면서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한다”고 주장했다.
대서양 무역전쟁의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EU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유감을 표하며 “우리 상품에 대해 부당하거나 자의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모든 무역 파트너국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EU의 대미 무역·투자는 세계 최대 규모로 많은 것이 걸려 있다”며 “양측은 이 관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오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