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논의의 초점이 ‘민생’에서 ‘인공지능’(AI)으로 옮겨지고 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을 선보인 영향이다. 여야가 최소 조(兆) 단위의 AI 예산 확충에 공감대를 이룬 가운데, 정부도 추경 규모에 따라 AI 지원 규모를 더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AI 패권국인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 개발·인력 확보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더 과감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3일 “지금까지 AI 지원 예산은 사실상 없던 것과 다름없던 상황”이라며 “연구개발(R&D)이나 정보화 예산의 일부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AI 예산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확정된 2025년도 예산안에는 AI 관련 예산이 다수 삭감되거나 증액이 백지화됐다.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등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AI연구용 컴퓨팅 지원 프로젝트’ 예산은 국회 상임위(과방위) 예비심사에서 3217억원이 순증됐지만, 여야의 ‘감액 예산안’ 정쟁 속에 정부 원안인 90억원으로 되돌아갔다.
AI 인재 확보를 위한 ‘생성AI 선도인재양성’·‘AI스타 펠로우십 지원’ 사업도 상임위 단계에서 각각 52억5000만원, 30억원이 증액됐지만 확정 예산안은 정부 원안(각각 52억원, 60억원)만 편성됐다. ‘AI 반도체를 활용한 클라우드 기술 개발’ 사업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370억원)보다 4억원 삭감됐고, ‘AI·모빌리티 소프트웨어 생태계 육성 사업’(10억원) 등의 신규 편성은 무산됐다.
정치권이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AI 지원 확대에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미국·중국의 ‘AI 전면전’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란 시각이 많다. 미국은 올해 연방 예산안에 AI 분야에만 200억 달러(약 26조원)를 책정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직후 AI·가상화폐 정책 컨트롤타워인 ‘AI 차르’를 신설했고, 민·관 합동으로 5000억 달러(약 710조원)를 투입하는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꺼내 들었다.
중국은 구체적 AI 예산을 대외비로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해 AI를 포함한 과학기술 분야에만 68조6000억 위안(약 1경3000조원)을 쏟아부은 상태다. 이정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은 “중국이 AI에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미국의 가장 큰 불안 요소”라며 “글로벌 AI 시장의 미중 양강 구도가 굳어지는 상황에서 한국도 AI 전문 인력 확보 등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정부는 1분기 중 AI 컴퓨팅 자원 확대와 데이터센터 규제 개선 등을 골자로 한 ‘AI 컴퓨팅 인프라 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 81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AI 전환 스타트업 등의 정책 금융 지원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