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부실 공수처, 설계자의 책임

입력 2025-02-04 00:33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존재감도 희미하던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를 하겠다고 나서자 ‘너희가 감히?’라는 식의 무시 전략으로 일관해 왔다. 속으로는 오히려 공수처의 참전을 반겼을지 모른다.

검경에 이어 공수처까지 경쟁하듯 수사에 뛰어들면서 수사권 유무와 수사 주체 등의 시비가 발생했고, 이는 혼란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수사판을 흔들며 관저 농성전을 벌일 빌미를 잡게 된 것이다. 내란 혐의 실체보다 절차적 논란이 더 커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공수처 수사 전면 거부에 이어 검찰 조사도 건너뛴 채 재판에 넘겨졌다. 비록 영어의 몸이 됐더라도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큰소리와 함께 강성 지지층 결집의 정치적 이득도 챙겼다. 나아가 지난 정부에서 검찰 개혁이란 미명 아래 강행된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조치가 법체계 곳곳에 구멍을 만들어냈음을 드러내는 부수효과도 냈다.

이것이 공수처 구성원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덜컥 공수처를 세상에 내놓은 정치권에 우선 책임이 있다. ‘수사권만 있는 검사’라는 개념으로 프로그래밍한 공수처법은 ‘기소권 있는 검사’를 전제로 한 형사소송법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법을 만든 뒤 패스트트랙에 태워 출발부터 시켰다. 탁상공론이 만들어낸 미완성품이었지만, 이후 별다른 개보수 작업도 없었다. 공수처의 잘못이라면 황새를 따라가려 한 뱁새처럼 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죄 사건을 덥석 물었다는 것. “밥을 떠먹여 줬는데 씹지도 못한다”는 민주당의 뒤늦은 질타는 그래서 무책임하게 들린다.

결과적으로 전국에 생중계된 공수처의 좌충우돌은 공수처 설계 자체에 결함이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선포 닷새 뒤인 작년 12월 8일 총력을 투입해 수사팀을 꾸리고 검경에 이첩 요청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머뭇거리는 검찰을 향해 “나라 기강이 무너졌다”며 사건 이첩을 압박했다. 그런데 수사가 공수처로 일원화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수사권 문제. 공수처법이 정한 ‘고위공직자 범죄’에 ‘내란’은 들어 있지 않다. 공수처는 직권남용 수사를 고리로 내란 수사를 전개했지만, 현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제외하고는 기소되지 않는 불소추 특권(헌법 84조)이 있다. 여권에서는 당장 “꼬리(직권남용)를 쥐고 몸통(내란)을 흔든다”는 반발이 나왔다.

법원은 체포·구속영장 발부와 윤 대통령 측 이의신청을 기각하며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을 일단 인정했다. 다만 공수처가 관할 법원으로 법에 명시된 서울중앙지법 대신 서울서부지법을 영장 창구로 택한 것을 두고 ‘판사 쇼핑’이란 지적은 계속됐다. 여기에 서울중앙지법이 윤 대통령의 구속 기한 연장을 연거푸 불허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공수처법에 공수처가 구속한 사건에서 검찰이 얼마나 더 추가 구속 수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는 탓이었다. 결국 검찰은 대면조차 못한 채 대통령을 기소해야 했다.

공수처는 계엄 사태의 해결사가 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존재 이유에 대한 의구심만 키운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윤 대통령은 불법·위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법적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다만 처벌의 과정도 중요하다. 공수처를 둘러싼 수사체계 흠결 논란은 그래서 더욱 아쉽고, 향후 재판에서도 쟁점화가 예고됐다는 점에서 뒷맛이 나쁠 수밖에 없다. 탄핵 정국 이후 수사구조 개편 논의 역시 불가피해졌다. 이미 공수처 폐지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지호일 정치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