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 ‘몸살’… 분노·혐오 내려놓고 하나님 뜻 구해야

입력 2025-02-04 03:00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9차 범시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저 사람 빨갱이다!”

지난 1일 부산역 일대,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들이 서울의 한 교회 담임인 A목사를 둘러쌌다. 옷까지 찢기는 등 폭행을 당한 그는 경찰의 도움으로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A목사는 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그간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아마 집회 참가자가 나를 누군가와 착각한 것 같다”며 “행여 혼동이 없었다 해도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이 오가는 현실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A목사는 정치 대결이 양극단으로 치닫는 세태에서 줄곧 상호 대화와 배려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

같은 날 세이브코리아가 부산역광장에서 국가비상기도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찬수(사진) 분당우리교회 목사 역시 최근 여론 공세에 휩싸였다. 이 목사는 지난달 19일 주일설교에서 “사분오열, 이런저런 상처들이 양산되는 시대인데 네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는 하나님만 아신다”며 “지금은 하나님의 ‘헤세드’(자비와 인애)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어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는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출구 없는 정치 논쟁으로 한국교회가 분열하는 상황을 염려한 요청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 목사에게 오히려 “권력의 부조리를 두둔하지 말라”는 공세가 이어졌다. 그다음 주 주일설교에서 결국 이 목사는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는 건 신앙의 언어지, 정치적 언어가 아니다”며 “자기 판단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이 기도”라며 진화에 나섰다. 지난 1일엔 “각자의 생각과 정치적·법적 판단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서로 간에 분노와 혐오를 쏟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기도합시다. 옳고 그름은 대한민국이 가진 민주적 절차와 사법 시스템을 통해 판가름 날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교인들에게 보냈다.

두 차례의 소명에도 2일 이 목사가 시무하는 경기도 성남 분당우리교회 앞에서는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와 유튜버가 주최한 ‘계엄 판단유보 발언 취소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집회 전 온라인상에서 이 목사를 향해 “머리를 그냥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자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거나 “네까짓 게 목사냐”와 같은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탄핵 정국을 맞아 정치 갈등을 봉합하려는 교회의 시도조차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진영 논리를 잣대로 목회자의 설교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 집회에서 폭력을 선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로 ‘편 가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숙함’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기독교인은 십자군이 되지 말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며 “말씀 앞에 바로 서 있는지 날마다 성찰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인의 태도”라고 강조했다. “하나님께 우리 편이 돼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도록 기도하자”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말도 인용했다.

교회의 지나친 정치화가 선교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나왔다. 미국의 짐 데이비스와 마이클 그레이엄 등이 2023년 출간한 ‘탈기독교시대의 교회’(두란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교회가 정치적 논리에 따라 분열되면서 신앙이 아닌 정치적 입장을 설교하는 교회들이 급증했다. 이는 교인들의 대거 이탈로 이어졌다.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건강한 토론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지만 현 상황은 양쪽 모두 선을 넘어 자신들의 입장을 강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정치화된 교회가 성도를 잃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교회 원로들은 성숙한 신앙을 당부했다. 박조준(91) 갈보리교회 원로목사는 “현 시국에 기독교인들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토론은 가능해야 하고 달라도 공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수의 세력이 그걸 덮으려 한다”며 “기독교인들이 거짓은 분별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는 항거해 ‘빛’되신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손봉호(86)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독교 신앙이 특정 정치 진영에 종속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중립적 입장이 신앙적 신중함의 표현일 수 있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건 성숙”이라고 말했다. 홍정길(82) 밀알복지재단 이사장은 “극단적 판단들에 대해 예수님이 ‘예면 예, 아니면 아니라고 하라’고 했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틀렸다고 하라고 하진 않았다”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고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동준 이현성 임보혁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