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부당 합병과 회계 부정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검찰의 주장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이 범죄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애당초 기소하지 말라는 검찰 자문기구의 권고를 무시하고 이 회장을 법정에 세운 검찰은 공소권을 남발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재벌총수라고 해서 사법 심사의 잣대가 달라져선 안 되지만 증거가 없다면 기소를 자제했어야 했다.
1, 2심 재판에만 4년6개월이 걸린 이 사건은 기소부터 논란이었다. 2020년 6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소집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3개월 뒤 서울중앙지검은 기소를 강행했다. 이후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조작되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주장을 폈지만 단 한 가지 혐의도 유죄 판정을 끌어내지 못했다. 검찰은 “추측으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시를 새겨들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삼성전자의 글로벌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한때 시가총액 기준 전 세계 반도체기업 1위였던 삼성전자가 이제는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에도 크게 추월당했다. 인공지능(AI) 구현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지만 D램 시장에 안주하던 삼성의 ‘초격차’ 경쟁력은 실종됐다. 주가가 반 토막으로 떨어질 만큼 주식투자자들의 시선도 싸늘해졌다.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의 위기는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이 회장은 항소심 무죄를 계기로 삼성의 위기 극복에 전념하고 한국 경제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검찰은 1, 2심 모두 완패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상고를 포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