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이거 우즈와 동시대에 선수 생활을 했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마주치기 일쑤였다. ‘골프의 황제’로 불리는 선수와 함께 경기한다는 건 나에게도 의미가 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0년 미국 조지아주 어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다. 4일 내내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우즈와 같은 조에서 경기를 치렀다. 심지어 최종 순위도 똑같은 공동 4위를 기록했다. 당시 우즈는 의문의 교통사고와 성 추문으로 활동을 중단한 후 5개월여 만에 공식 복귀한 무대에서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라운드 13번 홀에서 14번 홀 사이 그린 재킷을 입은 관계자 세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양해를 구하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2라운드에서 우즈와 같은 조에 편성됐기 때문에 18홀이 끝나면 많은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예상대로 18번 홀에 도착하자 약 50명의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은 “타이거 우즈와 함께 라운드를 치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여러분은 우즈가 잘 치길 원하나, 아니면 망가지길 원하나”라고 되물었고 “(우즈가) 잘 치길 원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골프장 밖의 일은 골프장으로 가져오지 마라. 그것이 선수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즈가 내 인터뷰 내용을 전해 들었는지 그 이후로 나에게 더욱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자신을 따라다니는 극성 갤러리로 인해 나한테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파를 할 때마다 다가와 “아주 잘했다”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결국 패트론(Patron)이 우승의 발목을 잡았다. 패트론은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사용되는 특별한 용어로, 단순한 관중을 넘어 골프 대회와 골프 문화를 후원하고 존중하는 관중을 의미한다.
최종 라운드 ‘아멘 코너’의 마지막 홀인 13번 홀에서 티샷을 하던 중 백스윙 톱에서 다운스윙하려는 순간 뒷조에서 거대한 함성이 들렸다. 필 미컬슨이 버디를 잡자 패트론들이 내지른 함성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집중력이 떨어져 티샷은 러프 깊숙이 날아갔고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이후 급격한 샷 난조에 빠지면서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12번 홀까지 선두를 달리며 동양인 최초로 대회 우승에 한발 바짝 다가섰기 때문에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아쉬움과 신기함이 교차하는 대회로 기억에 남아있다.
우즈의 한국어 실력과 관련된 일화도 있다. “KJ, 나한테 한국어 좀 알려줘.” “한국어 알려 달라고. 그럼 형님 해봐, 형님.” “혀엉니이임. 이게 무슨 뜻이야.” “브러더(brother)를 한국에선 형님이라고 해. 형님이라고 해봐.” 우즈는 절대 형님이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볼 때마다 “헤이, 브러더”라고 부르며 친근함을 표현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