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4일 미국은 종일 술렁댔다. 미 전역이 아칸소주에서 흑인 학생의 공립학교 등교 불허로 촉발된 인종차별 시위로 들끓었다. 공전의 히트작 TV시트콤 ‘비버는 해결사’ 첫 회가 이날 방영됐다. 하이라이트는 다른 데 있었다. 워싱턴DC의 소련대사관에서 로켓·위성 학술회의 폐막을 맞아 미·소 과학자들이 보드카를 마시고 있을 때 장내 방송이 나왔다. “소련이 방금 900㎞ 상공에 무인 인공위성(스푸트니크)을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미국 기술력이 소련을 압도한다는 믿음이 깨진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핵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는 “진주만보다 더 큰 전투에서 패했다”고 말했다. 하원 의원 클레어 부스루스는 스푸트니크가 우주에서 보내는 신호음을 “미국 자부심을 비웃는 소리”라고 묘사했다(‘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 기술 우위에 안주하다 후발 주자의 기술력에 충격을 받는 순간이라는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 조어가 이때 등장했다.
스푸트니크 모멘트는 70년대말~80년대 워크맨, 반도체, 자동차로 이어진 일본의 미국 침공에서 재현됐다. 중국이 스푸트니크 모멘트 대상이 된 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2월 국정연설에서 언급하면서부터다.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 질주를 경고했다. 2021년 7월 중국의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비행 성공 때, 지난달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등장할 때 스푸트니크 모멘트가 재차 언급됐다.
미국이 과거 소련, 일본과의 승부처럼 중국발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극복할지를 지켜보는 건 흥미롭다. 다만 68년 전 스푸트니크 파동 당시 최후진국이었던 상황과 달리 디지털 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가 미·중 AI 패권 경쟁을 남 일처럼 볼 순 없는데 지금의 처지가 한심하다. 경쟁력도 떨어지고 지원 입법도 미흡하다. 다수당 더불어민주당이 뒤늦게 반도체 특별법 통과를 위해 부산 떠는 걸 다행으로 생각할 정도다. 우리는 언제쯤 스푸트니크 모멘트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