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대내외 악재로 우리 경제의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만도 벅찬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조차 1%대 중반으로 전망하고 있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당장 세간의 주목을 받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함에 따라 으레 금리 인하나 추경 편성 등 단기적 처방이 실행에 옮겨졌는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저성장이 수반하는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확대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시급한 현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과되기 일쑤였다.
지난해 말 정부는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소득분배지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전반적인 소득분배 상황을 보여주는 소득지니계수가 나아지고 있으며 상위 20% 소득 평균값을 하위 20% 소득 평균값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도 근로연령층에서 2022년 5.76에서 2023년 5.72로 소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2023년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연평균 소득 격차는 사상 처음 2억원을 넘어섰으며, 이들이 보유한 자산도 상위 10%는 전년 대비 7.0% 증가한 반면 하위 10%는 2.0% 증가에 그치면서 평균자산 격차가 15억원을 돌파했다. 상위 10% 가구의 자산 점유율은 44.4%로 1% 포인트 증가했으나 나머지 가구들은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자산지니계수도 악화됐다. KB금융지주에 따르면 2024년 0.9%의 인구가 전체 가계금융자산의 59%를 보유하고 있다.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가운데 소득보다 규모와 영향력이 월등한 자산 불평등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으로 소득 증대 가능성이 제약되고 갈수록 경제적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국가와 사회에 대한 믿음이 줄고 결속력이 약해지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4년 생활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조사대상 OECD 41개국 중 35위, 경제적·사회적 평등도는 34위, 사회적 친밀도는 38위에 머물고 있다. 건강이 좋다고 답한 비율도 41위로 꼴찌다. 반면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용은 가장 높고, 자살률은 다른 나라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 경제 규모와 소득이 꾸준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성장률을 높여 소득이 대폭 증가한다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까. 1970년대 영국 정부는 모두가 주당 4파운드를 받거나, 내가 5파운드를 받으면 다른 사람은 6파운드를 받는 설문조사를 했다. 80%가 첫 번째 안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도 손해 보고 적은 금액을 동일하게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최후통첩 게임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유형의 실험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공정한 분배가 경제적 이득이나 성장만큼 중요함을 보여준다.
OECD는 경제 양극화와 이로 인한 사회공동체의 분열은 정치·사회적 불안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성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장만을 바라보고 불평등 확대를 계속 간과한다면 언젠가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지게 마련이다. 경제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심화는 포퓰리즘의 득세 등 정치적 불안으로 번지고 일시에 분배를 개선하고자 하는 급진적 정책은 경제를 수렁에 빠뜨린다. 지금 우리가 유럽과 남미 등에서 보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보듬고 함께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의 분열을 멈추고 화합과 안정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