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그늘… 5대 은행이 사실상 떼인 돈 7.1조원

입력 2025-02-03 01:18
연합뉴스

주요 은행들이 지난해만 7조원이 넘는 부실채권을 상·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에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취약차주들이 늘자 은행들이 사실상 받기를 포기한 ‘떼인 돈’의 규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해 7조1019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상·매각으로 털어냈다. 2023년 규모인 5조4544억원보다 30.2% 늘었고, 2022년 2조3013억원과 비교하면 3.1배 수준이다.

은행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채권을 ‘고정 이하’ 등급의 부실채권으로 분류한다.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면 아예 장부에서 지워버리는 상각, 부실채권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 매각으로 처리한다.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한 대출자들이 늘면서 은행권이 대규모 부실채권 정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취약 자영업자(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 상태)의 연체율은 11.55%로 11년 만에 최고치였다. 연체율이 오름 추세인 만큼 은행권도 연체 채권 관리에 고삐를 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출만기 연장·이자 상환 유예 조치로 가려져 있던 부실이 드러난 점도 부실채권 정리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수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의 장기화로 이자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은 늘고 있어서다.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털어내며 건전성 지표는 개선되는 모습이다. 5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NPL) 비율 평균은 11월 말 0.38%에서 12월 말 0.31%로 0.07% 포인트 내렸다.

은행권은 당분간 연체율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보고 건전성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를 멈추며 한은도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고금리 장기화가 예상되며 자영업자와 취약차주가 느끼는 대출 이자 상환 부담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도 은행권에 부실채권 정리 등을 통한 건전성 관리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52%로 전월 말(0.48%)과 비교해 0.04% 포인트 상승했다. 부실채권의 정리 규모가 늘었음에도 신규 연체 채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향후 대내외 불확실성과 내수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연체율이 지속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