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사안마다 극명하게 갈렸던 여야의 입장에 최근 교집합이 하나둘 형성되고 있다.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승패를 좌우할 중도층을 정치권이 의식하기 시작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신이 눈에 띈다. 분배 대신 성장을 말하고, 한·일 협력을 강조하고, 민생지원금 정책 포기를 밝히면서 연일 실용을 내세우고 있다. 오늘은 직접 좌장을 맡은 반도체특별법 정책토론회에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주 52시간제 예외 조치’에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2월부터 모든 국회의원이 민생 현장 중심으로 활동하겠다”며 탄핵 정국 대응 방식의 전환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이 대표와 민주당의 지지율 정체에서 비롯됐을 테지만, 각종 현안마다 여야 간극이 좁혀지는 긍정적인 상황을 낳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촉구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여당이 반대해온 까닭은 이 대표 선거용(민생지원금과 지역화폐)이 될 거란 의심 때문인데, 그가 추경 요구사항을 일부 철회하면서 타협의 여지가 커졌다. 반도체산업 주 52시간제 예외에 대한 야당의 입장 변화가 구체화할 경우 국민의힘이 민생 의제로 추진해온 ‘미래 먹거리 4법’(반도체특별법 전력망확충법 등)의 합의 처리도 탄력을 받게 된다. 이밖에 중국 딥시크 쇼크에 따른 인공지능(AI)산업 활성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이 공청회를 열었던 연금개혁 등 탄핵심판과 내란 재판에서 조금만 시야를 돌리면 여야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입법 의제는 산적해 있다.
오늘부터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된다. 그 배경이 무엇이든, 갈등과 분열의 국면에서 모처럼 찾아온 대화와 타협의 기회를 살려가야 할 것이다.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변신은 의심 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말을 바꿔온 전력 탓에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한계를 넘어설 방법은 실천밖에 없다. 2월 국회를 과연 민생 국회로 만드는지, 많은 이가 지켜보며 수권 능력을 평가할 것이다. 여전히 여당임을 자부한다면 국민의힘이야말로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이 대표의 우클릭을 민생에 활용하지 못하고 ‘악어의 눈물’로 배척하는 것은 그토록 비난했던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를 답습하는 꼴일 뿐이다. 이번 국회가 극우 지지층에 기댄 국민의힘이 중도층을 붙들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