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와 예능엔 황혼기 부부 갈등이 적잖게 등장한다. 은퇴 후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남편은 사소한 일에도 쉽게 삐치지만 아내는 자기주장이 강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녀들 역시 부모의 관계 변화를 지켜보며 혼란을 겪는다. 이는 역할의 변화가 아닌 나이가 들면 생기는 호르몬 변화로 기인한 현상이다. 즉 생리적·심리적 변화로 인한 결과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의 사자 무리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견된다. 아비 사자는 나이 들면 무리에서 물러나지만 어미 사자는 새끼를 돌보며 생존의 기술을 전수한다. 자연의 질서 가운데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고 이전과 다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 역시 나이 듦으로 신체·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면 가족 내 역할이 재편성된다.
여성은 폐경으로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줄어들면 감정적 안정감이 떨어져 자기주장을 더 강하게 표현한다. 반면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서서히 감소하면서 예전보다 감정적으로 민감해지고 작은 일에도 상처받는다. 이런 생리적 변화는 부부가 서로에 대한 기대와 관계 방식을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황혼기 부부의 이혼이나 별거 사례가 느는 것도 이런 생리적 변화를 고려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호르몬 변화는 부부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은퇴 후 남성은 가정 중심의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반면 여성은 사회 활동이나 취미로 자기만의 공간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 시기엔 전통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틀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배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족 관계를 정립할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중년 이후 호르몬 변화는 신체·심리 변화로 이어지기에 이에 맞춘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 여성은 폐경 후 에스트로겐 감소로 골밀도가 낮아지므로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칼슘과 비타민D 보충이 필요하다. 유제품과 뼈째 먹는 생선, 잎채소 등의 식품 섭취를 권장한다. 햇볕을 충분히 쬐어 비타민D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근력 운동으로 근육을 유지하고 골격을 튼튼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감소로 근육량이 줄면서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해 심폐 건강을 유지하는 게 좋다. 단백질이 풍부한 식사로 근육 손실을 방지하고 적절한 휴식함으로써 신체 에너지를 관리해야 한다. 또 취미 생활이나 사회적 교류 등을 하며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부부가 함께 건강 관리를 실천하면 서로의 변화를 잘 이해할 수 있어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운동과 활동을 소개한다.
남녀 모두에게 좋은 유산소 운동인 ‘걷기’는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하루에 30분~1시간 정도 걷기를 권장한다. 주말에 근교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심신의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요가나 스트레칭은 신체의 유연성을 유지하고 근육 긴장을 완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부부가 함께 가정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함께 하면 상대의 존재를 더 깊이 느끼며 운동에 집중할 수 있다. 최근 중년 부부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탱고 살사 볼룸 댄스 등 ‘댄스 운동’은 심박 수를 올려줘 심폐 건강에 좋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운동이기에 감정적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상대의 신체적·감정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황혼기 부부의 갈등을 줄이는 동시에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이 과정은 부부의 가정 내 역할뿐 아니라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아울러 노년기 삶에 대해 각자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부부를 서로의 동반자로 불러준 하나님은 이들에게 생리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지혜도 허락하셨다. 황혼기 부부가 서로를 이해한다면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