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40%를 넘어섰다는 발표를 보면서 한국은 이미 심리적 내전 상태로 접어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거나 헌법재판관들은 편향됐다는 주장이 이편 저편의 경계가 돼 전례 없는 분열을 부채질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론만 나오면 지금의 혼란과 갈등이 끝나리라는 말은 세상 모르는 순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우리는 헌법기관의 결정에 승복할 국민이 과반이라도 되기를 기대해야 하는 불안한 단계를 향하고 있다.
가짜뉴스와 허위선동의 폐해를 윤석열 대통령이 일찌감치 경계해 왔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국민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선동해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를 위협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도발…. 지난해 3월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가짜뉴스를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특정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제작하고 배포하는 가짜뉴스는 단순히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야기한다”고 진단하며 강력하고 체계적인 ‘대응 홍보전(anti-propaganda)’도 주장했다. 1940년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자국 내 확산을 막겠다며 미국이 제정한 반선전법(anti-propaganda act)을 역설하며 허위선동 대응을 위한 국가적 조처를 구상한 셈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윤 대통령은 자신을 가짜뉴스와 허위선동에 대한 투사로 투영한 그 무렵부터 비상계엄을 염두에 둔 논의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민통합위원회 성과 보고회 자리에서 가짜뉴스와 허위선동의 주범들을 “겉으로는 인권, 환경, 평화 같은 명분을 그럴싸하게 내걸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려는 세력”이라 칭했다. 그러면서 “자유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까지 그냥 용납하는 것을 통합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그는 군부에 “현 사법체계하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비상조치권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며 계엄 의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가짜뉴스를 스스로 재단하는 오류에 빠졌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를 출동시켜 가짜뉴스와 계엄을 이어내는 희한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비상계엄은 ‘반선전’의 전술이며, 그래서 국민 계몽령이었다는 변론은 이렇게 탄생했다. 윤 대통령의 프로파간다에는 선언만 있을 뿐 증거가 없다. 그는 지난달 15일 고위공직자범수사처에 체포될 때 “칼에 찔려 사망한 시신이 다수 발견됐는데 살인범을 특정하지 못했다 하여 자연사로 우길 수 없다”고 했다. 칼에 찔려 사망한 다수의 시신(부정선거의 증거)을 윤 대통령은 증명한 바 없으며, 선관위와 사법부는 음모론 속에만 존재하는 낭설이라고 수차례 지적해 왔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관들의 편향성을 주장하며 불복의 명분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 지지자들에겐 “레거시 미디어(신문·방송)는 너무 편향돼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는 말을 남겼다. 헌법기관을 신뢰하지 않는 다수의 추종자를 양산하고,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으려는 행태에서 그가 그토록 증오하며 배척하려 했던 ‘자유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거울처럼 비치는 건 과한 해석일까.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인 2020년 8월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해서 실현된다. 일단 제정된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본인을 정치의 길로 이끈 그때의 발언으로 돌아가 법의 지배를 흔드는 변칙의 사슬을 끊어내길 촉구한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