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43) 경기 내내 말씀에만 집중… 하나님이 보호하심을 느껴

입력 2025-02-04 03:10
최경주 장로가 2007년 미국 메릴랜드주 콩그레셔널CC에서 열린 에이티앤티(AT&T) 내셔널 2라운드 8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7년 7월 골프계 취재 열기가 또 한 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잭 니클라우스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는 ‘새로운 황제’ 타이거 우즈가 에이티앤티(AT&T) 내셔널 대회를 주최했기 때문이다. 대회장이 미국 워싱턴DC에 있어 골프 팬이 많았고, 우즈도 최고의 대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코스는 어렵기 이를 데 없었고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우승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나는 5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휴가를 즐기고 난 뒤여서 우승에 대한 욕심은커녕 컷 통과만 하자는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편하게 경기에 임한 탓인지 1, 2라운드 선두를 달렸다. 언론의 관심은 요란했다. 3라운드에서 잠시 주춤해 선두를 빼앗기고 2타 차로 뒤지게 됐지만 여전히 카메라는 나를 따라다녔다. 그날 저녁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마지막 라운드는 잘될 거예요.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을 외우면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더니 “내일 가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마지막 날에 대회장에 가도 되냐는 건 ‘우승 할 수 있겠냐’는 뜻인데 나도 모르게 “그래, 와”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마친 뒤 성경 구절을 찾았다. 2시간 가까이 잠도 못 자고 중얼거리다 결국 머릿속에 넣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말씀을 외워보니 입에서 술술 나왔다. 드라이빙 레인지, 퍼팅 그린에서도 잘 외워졌다. 그런데 티 박스에 올라서니 중압감이 밀려오면서 긴장되기 시작했다. 티를 꽂고 샷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서 간밤에 외웠던 말씀을 중얼거렸다. “너희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스윙하고 공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너희가 다음이 뭐더라’하는 생각뿐이었다.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14번 홀에서 3퍼트로 보기를 하고 15번 홀 티 박스로 걸어가다가 스코어 보드를 올려다 봤다. 그런데 웬걸. 내 이름이 맨 위에 있었다. 경쟁자였던 스튜어트 애플비로부터 선두를 빼앗아 역전한 상황이었다. ‘하나님이 지켜주고 계시구나.’ 미디어의 관심으로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을 보시고 아내를 통해 성경 구절을 알려주셔서 정신을 그곳에만 쏟게 하신 거였다. 내 뒤에는 하나님이라는 강력한 백이 있다는 확신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15번 홀 티샷을 자신 있게 마치고 계단식으로 된 티잉그라운드에서 두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토록 떠오르지 않던 성경 구절이 막혔던 수문이 열리듯 단번에 생각났다. 자신감이 차오르면서 스윙이 견고해졌다. 버디를 하고 17번 홀에서도 1타를 줄였다. 18번 홀은 매우 까다로웠다. 2위에 3타 앞선 선두였지만 트리플 보기 한 번이면 공든 탑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었다. 성경 구절을 외웠다. 사방이 물로 둘로 둘러싸인 그린을 공략할 때 나는 홀을 직접 노려 가깝게 붙이려고 했지만 캐디는 그린에 올리기만 하라며 8번 아이언을 주더니 저 멀리 가버렸다. 공은 그린에 안착했고 2퍼팅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결과는 3타차 우승이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6승, 미국 진출 이후 첫 역전승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달려와 안겼다. 우즈에게 트로피를 받으며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했다. 다음에는 우즈와의 일화를 풀고자 한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