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글로벌 기업 탐구] TPS, 소프트웨어 기업 비전… 본질까지 혁신하라

입력 2025-02-04 00:33

효율·품질 동시 극대화 'TPS' 도입
다모델 전략으로 세계 시장 공략
2020년 이동·연결 중심 기업 선언
제조업 넘어 새로운 기업 변신 추구

2010년 우리나라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로부터 리콜 판정을 받은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가 서울 반포동 토요타서비스센터에 입고돼 정비를 기다리고 있다. 토요타는 연이은 급발진 사고로 2004~2009년 생산된 프리우스 전체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1100만대를 리콜했다. 국민일보DB

현재 세계 자동차산업의 리더는 단연 토요타다. 테슬라와 자웅을 겨룰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토요타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현재도 자동차산업을 넘어 이동을 위한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토요타를 이해하려면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토요타 등장 이전의 두 모델

자동차산업은 1885년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에 의해 시작돼 프랑스, 영국, 미국으로 확산돼 1903년 포드자동차가 창업됐다. 초기 생산 방식은 엔지니어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장인생산으로 차종별로 소량만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도 벤츠나 롤스로이스 등 유럽 회사들은 장인생산 방식으로 고품질의 고가 자동차를 생산한다. 1905년 당시 독일과 프랑스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며 58%를 점유했다.

20세기가 시작되며 장인생산은 양적 효율성 한계로 급증한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포드의 대량생산이다. 연간 생산량이 5만대, 가격 2000달러이던 상황에서 포드는 값싼 자동차 대량생산을 위한 새 생산 방식을 1907년 개발했다. 각 노동자의 직무를 최대한 단순 세분화한 후 이들을 컨베이어벨트로 연결시킨 방식이었다. 그 결과 포드 T형 가격이 1925년 260달러까지 떨어졌고 1500만대를 돌파했다.

그후 GM이 1923년 시장별로 독립적인 사업부를 설립해 다양한 차종을 공급했는데 포드식 대량생산과 GM의 사업부 구조를 기반으로 양적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식 대량생산은 전 세계로 확산돼 1960년대 말까지 패권을 행사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자동차산업은 미국 중심 대량생산과 유럽 중심 장인생산이 양분했다.

토요타의 탄생과 TPS의 혁신

1930년대까지 일본 자동차는 연간 300대를 생산하던 미미한 수준이었다. 1937년 도요다 기이치로가 토요타자동차공업을 창업했으나 2차대전으로 군용 트럭만 만들어야 했다. 종전 후 토요타는 승용차 생산을 재개했으나 미국차와 경쟁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TPS로 불리는 토요타식 생산 방식 개발이었다. 엔지니어 오노 다이이치가 1950~60년대 개발한 TPS를 통해 토요타는 1970년대부터 다양한 새로운 모델을 끊임없이 출시하는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했다.

오노는 미국 회사들의 거대한 공장과 생산 규모가 자원 부족에 시달리던 토요타에는 부적합하다고 보고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개발했다. TPS의 핵심 원리는 최소 수준을 초과하는 모든 잉여를 의미하는 ‘무다’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생산 공정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카이젠’ 즉 개선하는 것이다. 오노는 대량생산이 품질을 무시하고 비용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역설적으로 이를 떨어뜨리는 무다의 원인이라고 강조하며 TPS의 품질 목표를 무불량으로 정했다. 단순반복 작업만 하는 탈숙련화된 노동자는 무불량을 위한 품질 개선 카이젠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오노는 세분화된 직무들을 자율적 작업팀으로 통합해 다양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게 했으며 현장 노동자에게 조립라인 전체를 정지시킬 권한까지 부여했다.

오노는 비용효율성은 품질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용효율성만 추구하던 미국식 생산 방식과 품질만 추구하던 유럽식 생산 방식을 동시에 넘어서 TPS를 기반으로 품질과 효율성의 동시 극대화를 추구한 양손잡이 전략을 실행한 것이다.

2020년 소프트웨어 기업 비전

승승장구하던 토요타는 2009년 엄청난 위기에 봉착한다. 미국 시장 공략을 서두르던 중 급발진 사망 사고가 계속 발생한 것이다. 특히 렉서스 급발진 사고로 일가족이 사망하기 직전 절박한 상황의 녹음이 공개돼 큰 충격을 줬다. 급발진 사고 원인으로는 가속페달, 매트, 전자제어장치 등의 결함이 지적되지만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논란이다. 당시 갓 최고경영자가 된 도요다 아키오는 공개 사과를 거듭하며 1100만대 리콜이라는 역대 최대 리콜을 단행했으나 주가가 폭락하는 등 생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도요타 아키오는 위기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모든 것을 근본 재검토한다. 진정한 의미의 카이젠 정신에 따라 필요하면 TPS 자체도 버릴 수 있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방식에 집착하지 않고 벤치마킹을 통해 폭스바겐의 모듈형 생산 등 다른 회사에게서 배우고, 점진적 개선에 대한 집중을 벗어나 과감한 급진적 혁신도 가능하게 하며, TNGA라는 혁신적 플랫폼 방식 생산을 개발하는 등 기존 TPS의 상당 부분을 수정했다. 그 결과 2012년 다시 1위로 복귀하고 2015년 포드의 전성기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영업이익으로 자동차산업 100년 역사를 새로 썼다. 2016년 독립회사들로 조직을 나눠 자율 경영을 하고, 조립 라인 노동자를 제외한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등 혁신적 시도를 계속했다.

2020년에는 이동과 연결 중심 디지털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겠다는 파격적 비전을 제시했다. 즉 토요타는 더 이상 자동차 제조 업체가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총동원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실시간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비전의 모델로 시즈오카에 건설 중인 스마트시티인 우븐시티는 인공지능(AI)과 로봇, 자율주행차 등 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축구장 100여개 면적의 도시를 완벽히 연결시키고 있다. 100년간 정체성이었던 자동차 제조업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것이다.

강점까지도 바꿔나가는 동적 역량

테슬라, 아마존, 구글 등 20년 내외의 신생 기업이 지배하는 현재 글로벌 경제에서 100년이 다 된 토요타가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대기업들에 희망적 메시지를 제공한다. 토요타 경쟁력의 기반은 양손잡이 동적 역량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본원적 전략 모델에서 기업이 품질 경쟁과 가격 경쟁 중 한 가지에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포터의 주장처럼 세계 자동차산업 역사는 포드 등 미국 회사들의 가격 경쟁과 벤츠 등 유럽 회사들의 품질 경쟁으로 양분돼 왔다. 그런데 토요타는 이 두 가지 상반된 경쟁우위를 TPS를 통해 동시에 극대화하는 양손잡이 전략으로 미국과 유럽 회사 모두를 압도했다. 또 다른 교훈은 자신의 강점까지도 서슴지 않고 끊임없이 바꿔나가는 동적 역량이다. 특히 2009년 급발진 위기 이후 필요하다면 TPS를 포함한 업의 본질 자체도 바꾸겠다는 토요타의 자세는 기존 강점의 덫에 사로잡혀 10여년간 한계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큰 교훈을 준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