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헌재 향한 잇따른 공세
‘탄핵안 인용’ 판단 때문인가
과격 지지자 뒤에 숨어서야
‘탄핵안 인용’ 판단 때문인가
과격 지지자 뒤에 숨어서야
요즘 국민의힘은 6년 전 임명돼 퇴임을 두 달 앞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뒷북 인사청문회’에 여념이 없다. 문 권한대행이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가깝다는 의혹 제기와 문 권한대행의 SNS나 블로그에 올라온 글 일부를 트집 잡아 ‘6·25 북침론에 동조했다’거나 ‘친중 성향을 드러냈다’는 식의 공세가 설 연휴 기간 하루가 멀다고 이어졌다.
여권의 공세에 문 권한대행은 X(옛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다. 다만 2006년부터 이어온 블로그는 닫지 않았다.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란 이름의 문 권한대행의 블로그를 보면 대부분이 간단한 일상이나 책, 영화 등을 보고 느낀 점이다. 글들을 보면 문 권한대행이 국민의힘 지적처럼 ‘최소한의 균형감각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념적으로 편향됐다’고까지 느껴지지는 않는다. 글의 일부 표현을 트집 잡아 ‘좌편향’으로 몰아가는 건 네거티브같이 느껴진다. 만약 이런 논란이 실제 청문회에서 제기됐다고 한들 낙마 사유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문 권한대행뿐 아니라 정계선·이미선 재판관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가족까지 들먹이며 “헌재 재판이 ‘패밀리 비즈니스’냐”(권성동 원내대표)고 비아냥댔다. 정 재판관의 남편이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 김이수 변호사와 같은 법인에서 활동하고 이 재판관 동생이 ‘민변 윤석열 퇴진 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판관이 이 대표와 친하다고 해서, 자신의 남편과 동생이 어느 조직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에 유리한 결론을 내릴 거라 단정하는 건 논리적으로 비약이다. 그런 식으로 문제 삼자면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임명 재가한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의 제부 정형식 재판관이 오히려 더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법적으로도 헌법재판관 제척 사유는 재판관이 당사자이거나 당사자의 배우자나 친족관계, 대리인 등으로 극히 제한돼 있다. 일반 재판이라면 불필요한 오해 소지를 피하기 위해 재판관 스스로 기피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헌법재판관이 8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법에 규정된 제척 사유도 아닌 이유로 기피를 하라는 건 지나치다.
헌재를 향한 잇따른 공세는 어쩌면 국민의힘 스스로 윤 대통령 탄핵안 인용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르겠다. 재판 공정성에 대한 군불을 계속 때야 헌재가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더라도 헌재 결정을 ‘정치 재판’으로 간주해 보수층을 결집할 수 있고, 이후에는 이 대표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 여론을 지렛대 삼아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 탄핵안이 넘어간 이후 국민의힘이 헌재뿐 아니라 법원, 검찰, 공수처, 경찰, 언론 등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공세를 퍼부은 건 이런 계산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만 국민의힘의 이런 모습이 가져올 파장도 생각해볼 일이다. 이미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 사법부와 각종 국가기관에 대한 음모론이 판을 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마저 국가기관들을 존중하지 않고 불신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지금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강성 보수층이 더욱더 ‘체제 부정’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 선고가 이뤄진다면 지난달 서부지법 사태 같은 폭력 사태가 재현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국민의힘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1985년 5월 잉글랜드 축구 클럽 리버풀과 이탈리아 클럽 유벤투스의 유러피언컵 결승 경기 중 리버풀 측 훌리건 난동으로 경기장 구조물이 붕괴돼 39명이 숨지는 ‘헤이젤 참사’가 벌어지자 영국 정부와 유럽축구연맹은 훌리건 처벌에 그치지 않고 리버풀을 비롯해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 대항전 출전을 최소 5년간 금지했다. 축구 클럽에조차 과격 지지자 제어 책임을 물은 것인데, 하물며 집권당이 지지자들의 과격화를 조장하고 뒤에 숨어서야 되겠나.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