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역사 왜곡은 어떨 때 처벌 대상인가

입력 2025-02-03 00:34

2019년 역사왜곡 금지법안에
표현의 자유 침해 이유로 반대

역사적 사실 날조한 선동까지
헌법상 권리 보호할 이유 없어

국헌 문란케 하는 부정선거론
언제까지 참고 묵과해야 하나

독일의 ‘홀로코스트 부정 금지법’처럼 우리도 ‘역사 왜곡 금지법’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회방송에서도 두어 차례 토론회를 열었는데, 2019년에는 나도 참여했다. 당시 패널은 역사 전공인 나를 포함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부장, 변호사, 네 명이었다. 당시 금지법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토론자는 없었다. 취지는 알겠어도 형사법 제정에는 다들 조심스러워했다.

‘역사’와 ‘왜곡’의 의미를 규정하는 문제부터 사상과 표현의 자유 같은 헌법적 기본권 침해 소지에 이르기까지 난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역사’와 ‘역사학’의 차이부터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역사학은 자료 발굴과 해석을 주로 다루는 학문인 데에 비해 일반인에게 역사는 대개 과거의 어떤 사실로 각인된 현실을 무시한 채 법을 제정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도 ‘역사 왜곡’이 구체적으로 무슨 행위를 이르는지 형사법으로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웠다. 지나간 역사(과거)를 과연 누가 100% 그대로 알 수 있느냐는 반문도 묵직했다. 그런데도 국가 권력이 특정 역사의 의미를 일방적으로 규정한다면, 되레 헌법상의 기본권인 이른바 표현의 자유(헌법 21조 및 22조 ①)를 침해하는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토론 결과는 온건한 반대가 4대 0이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사실이 아닌 허위일지라도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진실이 더욱 드러나고 허위를 자연스레 구축하리라는 그의 생각은 19세기 자유주의의 한 상징이지만, 현재 우리 현실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유로운 토론’이 과연 얼마나 가능한지 의문이다. 밀은 토론이 없는 일방적 주장(거짓, 궤변)이라도 법으로 금지하기보다는 여론을 통해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과연 현재 우리나라 여론이 그렇게 상식적인지도 의문이다. 반(反)나치 국민 정서와 교육이 꽤 확고한 독일에서도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반인륜적 범죄의 싹을 방지하려 노력하는데, 우리는 민주공화국 교육도 미흡하고 그런 국민 정서도 약한 편이라는 ‘현타’가 지난 섣달부터 뇌리를 강타했다.

역사적 사실을 고의로 날조해 민주공화국을 해치는 선동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겠다. 실제로 몇 가지 단서를 달아 기본권을 제한하고 처벌할 수 있다. 한 예로,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한 후 지금까지 10여 차례 개정했다. 대표적인 전환점은 1990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한정 합헌 결정이었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만 축소 적용한다면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이에 따라 이듬해 국회는 헌재 결정을 반영한 8차 개정을 통해 규제 대상을 축소하고 더 구체화했다.

1990년 헌재 결정문을 보면, 단연 ‘국가’가 핵심어다. 또한 그 국가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다. 헌법 1조에 명시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제를 풀어서 설명한 셈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영토에서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이나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헌법으로 설치한 국가 기관을 강압으로 전복시키거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 곧 내란죄는 엄히 처벌한다. 즉 국가(대한민국)와 인권(개인)을 침해하는 표현이라면 오히려 처벌하는 편이 헌법 취지에 부합한다.

22대 총선 부정선거론은 우리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든다. 국헌을 부정하고 행동으로 문란케 한다.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저들은 이미 온라인을 넘어 광장으로 나온 지 오래다.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수백명 개입했다는 허위 사실을 퍼트린 장본인은 명예훼손죄로 실형까지 살았지만, 그가 퍼트린 날조 내용은 지금도 저들 부정선거론 집단에서 언론의 옷을 입고 왕성하다.

그런 자들이 아스팔트를 메우는 현실이다. 지난해 총선도 이미 역사일진대, 악의적 역사 왜곡과 선동 행위를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나 표현의 자유라는 원론을 그저 기계적으로 적용하며 언제까지 묵과해야 할까. 밀의 생각이 실제로 통하는 대한민국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