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관 의견이 4대 4로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엇갈린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이 나온다면 국론 분열만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정치적 사건에서 헌재 판단이 재판관 성향에 따라 완전히 엇갈리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23일 이 위원장 탄핵 사건에서 김형두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재판관은 기각 의견을,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계선 재판관은 인용 의견을 내 탄핵이 기각됐다. 탄핵이 인용되려면 6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 위원장 등이 ‘방통위 2인 체제’로 방송문화진흥원 이사 선임안을 의결한 행위가 정당한지가 쟁점인 사건에서 기각 측은 법 위반이 아니라고 봤고, 인용 측은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보수·진보 성향에 따라 법 해석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을 놓고 충격적이란 반응까지 나왔다. 헌재 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정치적 상황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갈릴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다”고 말했다.
앞서 헌정사상 첫 검사 탄핵 사건이었던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도 5(기각)대 4(인용)로 기각 결정이 나왔다. 검찰 기소가 ‘보복 기소’인지 ‘중대 법 위반’인지를 놓고 판단이 갈렸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과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에서도 법률 무효 확인 청구가 5(기각)대 4(인용)로 기각됐다. 주요 사건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 재판관은 보수적으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 재판관은 진보적으로 결정하는 태도가 강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판관 성향을 둘러싼 정치권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여당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분 관계, 문 대행의 ‘다이빙벨’ 관련 SNS 게시글 등을 문제 삼았다. 여당은 이미선 재판관 동생이 민변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점도 문제 삼았다. 앞서 민주당도 윤 대통령 탄핵 사건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윤 대통령 지명으로 임명된 점, 윤 대통령이 임명한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이 정 재판관 처형인 점 등을 ‘탄핵 방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당 측이 단순히 친분이나 특정 영화에 대한 소감만 갖고 회피 주장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 변호사는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법리적 주장은 한계가 있으니 지지층 결집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엇갈린 판단이 나타난다면 국론 분열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 분열이 심각한데 정치인들이 분열된 헌재 결정을 적극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의 만장일치 결론이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헌재 스스로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절차적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헌재 재판관이 진영 논리에 따라 판단한다는 게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만장일치 파면 결정으로 갈등이 일단락됐는데 이 같은 상황에선 어떤 결정이 나와도 새로운 대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