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 금리 인하 압박에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동결했다. 향후에도 금리 하락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통화당국의 선택 폭도 좁아졌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수가 크게 위축된 상황을 반영해 2월 기준금리를 내려도 그 이후엔 환율 상승 등의 부담으로 인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커졌다.
연준은 29일(현지시간) 종료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25~4.50%로 유지했다. 지난해 9월 이후 3연속 금리 인하 행진을 멈춘 것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을 동결 이유로 꼽았다. 연준은 결정문에서 “실업률은 최근 몇 달 동안 낮은 수준에서 안정됐다. 노동시장 상황은 견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다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2월 FOMC 결정문에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근접했다’고 표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에 대해 ‘단순한 문구 정비’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파월 의장은 “금리 조정 여부를 고려하기 전에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거나 노동시장 약세(신호)를 봐야 한다”며 “통화정책 기조 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관세·이민·재정정책, 규제와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결정을 두고 연준이 ‘관망 모드(Wait-and-See)’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파월과 연준은 자신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초래한 문제들을 멈추는 데 실패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최근 세계경제포럼 화상연설에서 공개적으로 연준에 기준금리 인하를 촉구했다. 그러나 연준이 만장일치 동결을 결정하자 “연준이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젠더 이데올로기, 친환경 에너지, 가짜 기후변화에 시간을 덜 썼다면 인플레이션은 절대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준의 이번 결정으로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은 기존 1.5% 포인트로 유지됐다. 다만 한국은행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내수 상황 등을 고려해 2월 금리를 내리더라도 이후 연속 인하를 결정하기엔 부담이 따른다. 한은이 다른 나라 대비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춘다면 원화 가치 하락과 함께 환율 급등, 외국인 자본 유출 등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정부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주재로 ‘거시경제 금융현안 간담회’(일명 F4 회의)를 열고 FOMC 회의 결과와 트럼프 행정부 정책 등에 따른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했다. 최 권한대행은 “미 신정부의 통화·대외정책 등을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