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사양 칩으로 고성능 구현… ‘돈 먹는 AI’ 통념 깼다

입력 2025-01-31 00:00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는 막대한 자본이 있어야 AI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통념을 깼다. 비용 때문에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을 포기했던 기업들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고성능·고비용 AI 칩이 더 이상 쓸모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불거졌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시장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0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딥시크는 추론형 AI 모델 ‘딥시크-R1’에 저사양칩을 사용하고도 오픈AI의 ‘o1’보다 소폭 앞선 성능을 구현했다. 최신 모델인 딥시크-R1에는 어떤 칩을 사용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딥시크는 이보다 한 달 전 공개한 ‘딥시크-V3’에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칩 H800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H800은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든 중국 수출용 제품으로, 최신 제품에 쓰이는 고사양 칩보다 저렴하다. 딥시크는 V3 모델을 훈련하는 데 560만 달러(약 80억원)를 지출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메타의 최신 AI 모델인 ‘라마3’ 모델을 훈련하는 데 사용한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다.


빅테크 업계는 초반 ‘흥미롭다’는 반응에서 딥시크를 경계하는 반응으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는 자사 기술의 데이터가 딥시크에 허가 없이 유출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딥시크 실체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실적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딥시크가 실제로 저사양 칩으로 AI 모델을 만들었다면, 빅테크 기업 중심의 AI 모델 개발이 중소 업체들로 번져 중·저사양 칩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딥시크가 미국의 수출 규제 때문에 고사양 칩을 쓰고도 저사양 칩을 썼다고 밝혔을 경우에도 고사양 칩에 대한 수요는 견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경우라도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나, 이보다 낮은 버전인 4세대 HBM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에는 큰 타격이 없을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칩뿐 아니라 다양한 AI 칩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사양 칩의 활용도가 많아지면 AI 생태계가 지금보다 더 폭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딥시크의 등장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AI 반도체 산업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