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책 읽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입력 2025-02-01 00:35

가장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는 친구가 추천해준 작품이다. 취향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믿고 볼 수 있다.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와 ‘세브란스’를 보고 있는데 모두 지인이 추천해준 드라마다. 역시 재미있다. 반면 OTT 드라마와 비교할 때 책은 점점 더 추천받기 어렵다. 심지어 책을 좋아하는 10대는 외롭다. 책을 좋아하면 ‘진지충’ 소리를 듣기 십상이고,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데 놀랍게도 지난해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대표들로부터 책 추천을 여러 권 받았다. 요즘 동네책방은 과거처럼 도매상에서 신간을 받아 일률적으로 진열하지 않는다. 책방에 어울릴 만한 책을 직접 골라 진열한다. 이른바 큐레이션이다. 그럼에도 소개받은 책은 그 이상이었다. 과거 친구가 권했던 책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중 한 권이 앨리슨 벡델의 ‘펀 홈: 가족 희비극’이었다. 토니상 5개 부문을 석권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펀 홈’의 원작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묻는 자전적 그래픽노블이다. 이 책으로 벡델을 처음 알게 됐고 작가의 다른 책도 만났다. 또 한국계 미국인인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 역시 책방 대표 추천으로 읽었다. 한국전쟁 후 기지촌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어머니 군자의 삶을 딸인 조가 복원해낸 기록이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모두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어머니의 삶이 뜨거웠다. 취향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 자칫 외곬에 빠지기 쉽다. 나 역시 늘 비슷한 책들 안에서 맴돈다. 책방 대표들이 건네준 책은 이런 점에서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여행과도 같았다.

알고 보니 이 책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동네책방 북클럽에서 함께 읽은 책이었다. 북클럽 회원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래도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을 내게 권했다. 친구의 추천을 신뢰하듯 동네책방 북클럽 회원들이 뜨겁게 읽은 책은 흥미로웠다.

동네책방은 지역 독자와 함께 여러 활동을 한다. 그중 책방을 떠받친다 해도 부족하지 않은 일이 북클럽이다. 북클럽이 활성화된 책방이라면 다른 건 더 살피지 않아도 좋다. 충북 괴산 ‘숲속 작은 책방’은 여러 면에서 동네책방의 심볼과도 같다. 이곳의 가장 든든한 자산 역시 북클럽이다. 경기도 김포 꿈틀책방에는 ‘엄마의 서재’라는 북클럽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책 외에 나 자신을 위한 책 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모여 무려 9년여를 이어오고 있다.

하루하루가 심드렁하고, 무슨 책을 읽을지 모르겠을 때 북클럽은 더할 나위 없다. 근대의 독서란 묵독을 기반으로 한 혼자만의 읽기다. 하지만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사람들이 고른 책을 읽고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예상치 못한 기쁨을 선물한다. 책방과 책과 사람을 만나는 지름길이라고나 할까. 물론 당장 참여하기 어렵더라도 실망할 건 없다. 책방마다 북클럽에서 읽은 책들을 따로 진열한다. 그 책부터 만나보자. 곧 어떻게든 북클럽이 하고 싶어질 테다.

한미화 츨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