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완전한 비핵화’ 밝힌 날, 김정은 ‘핵 시찰’… 주도권 싸움

입력 2025-01-30 18:4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강도·절도 범죄를 저지른 불법 체류자를 구금할 수 있도록 한 ‘레이큰라일리법’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논의할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기 전부터 북한과 미국의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 백악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날 북한은 보란 듯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시설 시찰을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북한을 향해 대화 재개의 손짓을 했음에도 김 위원장은 ‘핵무기 강화’로 응수한 것이다.

브라이언 휴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북한 핵 개발 관련 트럼프 정부의 입장을 묻는 국민일보의 서면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그랬던 것처럼 집권 2기에서도 북한의 완전한(complete)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답했다. 백악관은 전날부터 언론에 이 같은 내용을 밝혀왔다. 트럼프가 취임 첫날인 지난 20일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면서 ‘스몰딜’ 협상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백악관의 투트랙 전략”이라며 “트럼프는 톱다운 방식으로 김 위원장에게 정치적 거래가 가능하다는 러브콜을 보내고 실무적으로는 원칙을 견지하는 트럼프 특유의 거래적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장면. 연합뉴스

북한도 ‘장외 신경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 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29일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핵 방패의 부단한 강화가 필수불가결하다”며 “세계적으로 가장 불안정하며 가장 간악한 적대국들과의 장기적인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김 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밝힌 지 6일 만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분간 미국의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고 핵 무력 강화 노선을 가속하면서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으로 분석했다. 양 교수는 “김 위원장 발언이 트럼프 2기 출범 직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트럼프의 러브콜에 대해 핵보유국 지위를 확고히 하고 향후 대미 협상에서 몸값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자극적인 행동 방식이 아닌 보여주기식 방식으로 핵 능력을 과시하면서 미국의 반응을 떠보려는 의도일 수 있다”며 “올해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생산한 뒤 내년 북·미 핵 군축협상을 하겠다는 전략적 의도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휴스 대변인은 “트럼프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였다”며 “그(트럼프)는 강인함과 외교를 조합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사상 첫 (북·미) 정상급에서의 공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가 “김정은은 똑똑한 남자” “내가 돌아온 것을 김정은이 반길 것” 등 김 위원장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했고, 백악관 역시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언급한 만큼 두 정상 간 대화가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민지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