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나의 골프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해로 꼽힌다. ‘골프계 전설’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로부터 약 한 달 간격으로 우승 트로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서전 ‘코리안 탱크 최경주’에도 밝혔듯이 두 사람이 각각 주최한 대회에서의 우승은 최경주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5승과 6승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전까지 나는 ‘우승 몇 번 해 본 선수’였지만 황제들이 주최한 대회를 계기로 ‘언제든 우승이 가능한 선수, 케이제이 초이(KJ Choi)’로 인정받게 됐다.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니클라우스가 주최한 메모리얼 토너먼트는 과거부터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경기였다. 니클라우스와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해에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이 주최하는 대회에 선수 자격으로는 마지막으로 출전했는데, 운 좋게 그와 같은 조로 1, 2라운드를 치렀다. 당시 그의 은퇴는 세계적으로 화제였다.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BS)이 그의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 마지막 출전을 기념해 5파운드 지폐를 2만장 한정 발행했을 정도다.
나도 2라운드를 마친 뒤 아들 호준이에게 주려고 새 장갑에 사인을 부탁했다. 사인받은 장갑은 액자에 끼워 보관할 만큼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잭은 나에게 큰 존재였고 그가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2007년 6월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아이들과 함께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 뮤어필드 골프클럽에 왔던 아내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날 가족 예배를 드리던 도중 갑자기 한마디를 했다. “당신, 이번 주에 우승할 테니 걱정 말고 치세요.” 속으로 ‘아니, 이게 어떤 대회인데 내가 우승을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대회는 3라운드까지 예상대로 진행됐다. 아담 스콧이라는 선수가 3라운드에서만 10언더파를 몰아치면서 선두로 치고 나갔다. 나는 5타 차 공동 7위로 나름 선전했지만 우승까지는 부족해 보였다. 그날 저녁 내 입에서 “아담 스콧이 10언더파를 쳤으니 저는 7언더파만 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기도가 흘러나왔다.
대회 마지막 날, 나는 평소처럼 라운드를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고 마음이 평안했다. 덕분에 파와 버디를 번갈아 하는 징검다리 버디 행진을 펼쳤다. 전반 9홀에서만 6언더파를 치고 스코어 보드를 확인했는데 맨 위에 내 이름이 있었다. 오싹한 전율이 온몸을 감쌌다. 마음이 흔들리면서 샷도 불안정해졌다.
위기가 찾아와도 스코어는 달라지지 않았다. 11번 홀에는 버디 하나를 추가했고 16번 홀에서는 그린 근처 깊은 벙커에 빠졌다. 17번 홀에서는 두세 번째 샷을 잇달아 실수했다. 마지막 홀도 두 번째 샷이 그린 앞 벙커에 들어갔다. 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자신 있게 휘두른 샌드웨지에 공이 붕 떠서 홀에 가깝게 붙었고, 파 퍼팅을 성공시키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7언더파 스코어도 지켰다. 기자들이 2006년 8월 크라이슬러 챔피언십 이후 10개월 만에 5승을 한 것에만 집중할 때 나는 니클라우스에게 감사를 전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