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트럼프, 덩샤오핑까지
선거 임박에 이 대표 변신 박차
9부 능선 넘었다 자신하지만
위장 우클릭으론 지지 못 얻어
흑묘백묘는 탈극단주의 의미
철 지난 진보 신념 접어야 성공
선거 임박에 이 대표 변신 박차
9부 능선 넘었다 자신하지만
위장 우클릭으론 지지 못 얻어
흑묘백묘는 탈극단주의 의미
철 지난 진보 신념 접어야 성공
‘한국의 샌더스→한국의 트럼프→한국의 덩샤오핑?’
기본소득 공약을 내세운 미국 진보 정치의 아이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대표는 샌더스 의원과 가치관이 상극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띄운다. 외신에 “어떤 이들은 나를 한국의 트럼프라 부른다”고 했다. ‘어떤 이들’로 둘러댔지만 본인의 속마음이란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자신과 유사한 ‘암살 위기’ ‘사법리스크’를 뚫고 대권에 오른 트럼프의 스토리가 샌더스와의 유사점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제 중국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의 ‘흑묘백묘’ 실용주의 노선까지 넘나든다. 이 대표 변신은 선거의 시간이 왔음을 뜻한다.
이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이 이를 집대성했다.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 “기업의 성장 발전이 국가 경제의 발전이다” 덩샤오핑 어록이 뒤를 잇는다.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니냐.” 여당 대표나 우파 인사의 발언으로도 손색 없다. 불법 파업을 부추길 ‘노란봉투법’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의 발의·통과를 진두지휘한 이가 맞나 싶다.
이 대표가 설 연휴 기간 SNS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세상을 목도할 9부 능선을 지나고 있다.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자”고 썼다. 다들 ‘새로운 세상’을 이 대표 집권으로 읽는데 고지가 눈앞에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마지막 고비를 넘기 위해’ 필요한 게 이미지 변신임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선거에서 중도표 구애를 위한 (일시적) 말바꾸기야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대표 발언의 널뛰기는 정도가 심하다. 경기지사 시절부터 강조하던 평등 지향의 ‘기본소득’을 지난 대선 때 “제1공약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기본사회 건설’을 당 강령에 못 박았다. 계엄 사태로 조기 대선 움직임이 있자 다시 ‘성장’을 강조한다.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 부른 이 대표는 지금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단식투쟁도 불사했는데, 주한일본대사에게 “일본에 대해 애정이 매우 깊다”고 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첫 탄핵소추안에 “가치외교란 미명 하에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한다”고 쓰며 속내(?)를 들키자 우클릭에 더욱 열심이다.
하지만 여론은 표심용 줄타기가 아닌 국가의 미래, 세계 정세에 맞는 과감한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이 대표의 지지율 정체가 이를 말해준다. 세계를 강타한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돌풍을 보자. AI 패권을 거머쥐려는 미국의 제재에 중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전 중이다. 과거 냉전보다 더한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살벌한 AI 전쟁이다.
3대 AI 강국을 꿈꾸는 우리의 입지는 어떤가. 글로벌 AI 100대 기업에 국내 기업은 전무하다. 미국(59곳), 중국(10곳)과 견준다는 게 사치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도 1곳씩 있다. 디지털 강국 한국의 AI 존재감은 바닥이다. 반도체특별법과 전력망확충법을 통해서라도 AI전에 참전해야 한다. 그런데 입법 권력인 이 대표와 민주당은 국가 명운이 달린 이들 법안보다 효과도 희박한 전국민 25만원 지원금에 더 골몰한다.
이 대표가 추구하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시류나 인기 영합용이 아니다. 덩샤오핑은 대약진운동의 폐해가 두드러진 1960년대 초 흑묘백묘론을 언급했다. 이후 문화혁명기에 자본주의 노선을 따르는 ‘주자파’로 몰리며 실각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복권 후 1978년 공산당 대회에서 흑묘백묘론을 중국의 개혁과 개방의 지침으로 내세웠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은 리더의 의지와 통찰력이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었다.
덩샤오핑 실용주의는 마오쩌둥의 시대착오적 근본주의의 틀을 깨는 데서 시작됐다. 이 대표가 한국의 덩샤오핑을 꿈꾼다면 고리타분한 진보 도그마부터 접어야 한다. 자국 우선주의, 공급망 재편, 경제안보의 엄혹한 글로벌 현실에 눈떠 관성적인 친중·반미·반일 성향, 원전 거부감 등에서 탈피하라는 얘기다. 포퓰리즘보다 경제 체질 개선, 미래 투자에 방점을 찍기 바란다. 또 하나. 덩샤오핑이라면 “실용주의 한다고 하니 진짜인 줄 알더라”라는 말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