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쯤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가 불쑥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0.73이라는 숫자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0.73이라는 숫자를 빨리 잊고 다시는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0.73은 20대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 두 후보 간 득표율 차를 의미하는 숫자로 0.73% 포인트는 역대 대선 최소 득표차였다. 여권은 5년 만에 탈환한 대권이 1% 포인트도 차이나지 않는 살얼음판 위의 승리였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민심을 살피라는 것, 야당은 눈앞에서 놓친 ‘승리 같은 패배’를 얼른 잊고 초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수많은 선거를 치러낸 중진 의원의 조언이었다. 그러나 대선 불과 3년 만인 지금 양 진영의 모습은 중진의 조언과는 다른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0.73% 포인트라는 지난 대선의 의미를 취임 직후 새까맣게 잊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임기 초반부터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에 이르기까지 벌어진 수많은 일을 설명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25차례나 재의를 요구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거부권을 임기 절반 정도인 2년7개월 만에 행사한 것이다. 이런 ‘거부권 남발’이 국민 눈에 얼마나 국회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쳤을까. 결국 윤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하면서 국회 무시의 절정을 보여줬다. 현직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이 보여준 행태 역시 민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극렬한 계파 갈등과 윤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은 국민의힘이 지난 대선이 신승이었다는 것을 다 잊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특히 계엄 사태 이후 민주당과 두 배 가까이 벌어졌던 정당 지지율이 급격히 회복되면서 국민의힘이 우경화되는 모습은 결국 지지층 결집에만 기대겠다는 여당의 전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도 지난 대선 이후 교훈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내내 거대 야당의 권력을 가감 없이 사용했다. 이재명 대표 중심 체제를 공고히 한 22대 국회에서는 당 안팎의 브레이크조차 없어 보였다. 윤석열정부 들어 민주당이 주도해 탄핵한 공직자는 무려 29명에 이른다. 정점은 지난해 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한 총리의 잘못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적지 않은 국민 눈에 한 총리 탄핵은 무책임한 정치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안에 이어 국무위원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내려질 때마다 민주당은 자신의 위력 과시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달 들어 국민의힘 지지율이 급상승해 민주당과 오차범위 안팎에서 경쟁했을 때 민주당이 보인 반응도 그들의 ‘자신감’을 읽게 했다. 이달 중순 지지율 급변 국면에서 민주당의 일성은 “보수 과표집”이었다. 물론 윤 대통령 체포 이후 보수 진영이 급격히 결집하면서 과표집된 측면도 분명한 사실이었으나 중도층이 기대한 모습은 ‘겸허한 성찰’이었을 것이다. 헌재의 판단을 예단할 수 없으니 조기 대선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제 대선이 치러지든 결국은 중도층의 ‘흔들리는 마음 한 조각’을 차지하는 쪽이 대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든 야든 0.73의 의미를 가볍게 봐선 안 될 것이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