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9일간의 연휴가 시작됐다. 책장을 두루 훑으며, 이동 중에 읽을 책을 고른다. 실패 없는 연휴 독서를 위한 몇 가지 나만의 원칙을 세워 본다. 첫째, 들고 다니기 좋게 큼직한 코트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여야 한다. 둘째, 양장이나 무거운 책은 피한다. 셋째, 분량이 짧고 완결된 이야기라야 한다. 넷째, 다양한 작가의 색채를 엿볼 수 있는 앤솔러지라면 더욱 좋다. 이 기준에 모두 부합하여 고른 책은 다람출판사의 앤솔러지 ‘봄이 오면 녹는’이다. 특히 이 책은 ‘양자 얽힘’이라는 과학적인 개념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세계가 거대한 실뭉치라면 타래를 풀거나 매듭짓고, 교직한 편물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내용과 같지 않을까. 이 책의 주제는 ‘손절’이다. 성혜령, 이서수, 전하영. 세 명의 작가가 함께 세계관과 소재를 공유하여 쓴 단편이지만, 서로 다른 문체의 질감과 분위기를 견주어 읽는 맛이 있다. 각각의 단편은 실 한 가닥을 길게 뽑아 매듭을 지은 것처럼 독립적이다. 그러나 사슬고리를 꿰듯이 다른 작가가 쓴 장소나 세계관을 끌어오거나, 다채롭게 변주한다. 예컨대 성혜령 작가의 단편에서 주인공은 도서관에서 한 남자를 자꾸 마주친다. 그는 책은 읽지 않고 도서관 벤치에 책을 베고 누워 있으며, 말보로 레드를 피운다. 이서수 작가의 소설에서도 같은 남자가 등장한다. 소설 속 인물이 옆으로 한 칸 이동해 카메오로 등장한 것만 같다. 여전히 그는 하릴없이 도서관 마당을 배회하며, 줄담배를 피운다.
이처럼 독자는 장소와 인물, 소재가 겹치는 부분에 얽힌 실마리를 찾는 쾌미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이, 문장 곳곳에 배치한 단서를 찾으며 책 모서리를 접는다.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눈을 헤치며 버스가 톨게이트를 빠져나간다. 흡족한 기분으로 꽈배기 무늬 목도리를 손끝으로 더듬는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