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투스(ΙΧΘΥΣ)’는 물고기라는 뜻의 헬라어다. ‘예수(Ιησου) 그리스도(Χριστο) 하나님의(Θεου) 아들(Υιο) 구세주(Σωτηρ)’의 첫 글자를 조합한 말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박해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암호로 사용했다.
박해의 시대는 끝났고 우리에겐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익투스’로 믿음을 고백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사명을 다하는 이가 있다. 서울 양천구의 익투스치과 임상규(47) 원장이 그렇다.
‘어둠을 밝히는 빛’ 기도로 세운 병원
익투스치과는 엘리베이터 없는 3층 건물의 2층에 있다.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유리 벽면에 새겨진 물고기 모양의 ‘익투스’ 표식과 요한복음 8장 31~32절 말씀이 눈에 띈다. 치과 안에선 잔잔한 찬양이 흐른다. 진료대기실 소파 앞 탁자 위엔 신앙 서적이 놓여 있다.
임 원장은 “인생길에서 만난 믿음의 선배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며 “나 또한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신앙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세상 속에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병원은 다세대 주택과 낡은 건물이 유난히 많은 동네에 있다. 개원 당시 3층에는 점집도 있었다. 이런 곳에 개업하겠다고 하자 선후배들은 “이런 외진 곳을 골랐냐”며 의아해했다. 인테리어 업체도 “왜 어두운 건물에서 개업하려는 거냐”고 물을 정도였다.
임 원장은 “하나님이 이 공간과 일터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일 기도하며 이곳을 세워나갔다”며 “이후 점집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고 떠났다”고 말했다.
2015년 개원 이후 찾아온 환자 대부분은 치과 치료비에 대한 부담감으로 치료 시기를 놓쳐 상태가 악화된 이들이었다고 했다. 임 원장은 ‘치과 진료는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신념으로, 환자의 처지와 상황을 세심히 살피고 건강보험을 최대한 활용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웃과 환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진심 어린 배려 덕분일까. 동네에선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착한 치과”라고 입소문이 퍼졌다.
믿음의 시작이 된 해외 의료봉사
임 원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가끔 교회에 갔다. 그러나 그에게 교회는 ‘지루하고 따분한 곳’이었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학과에 입학하고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도 ‘신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제대 후 복학했지만 IMF 여파로 이공계 취업 전망이 어두웠습니다. 신앙심 깊은 후배의 권유로 서울대 치과대학 편입시험에 도전하며 ‘합격만 시켜주시면…’이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합격 후엔 다시 하나님을 잊고,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기복신앙에 머물던 그가 신앙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변화하게 된 계기는 치과대학 본과 3학년 시절 기독교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떠난 해외 의료봉사였다.
임 원장은 “선교가 목적이 아닌 여행이 좋아서 봉사에 참여했지만 몰려드는 환자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선교사님 얼굴에는 항상 기쁨이 넘쳤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병원을 개업했다면 훨씬 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을 분들이었죠. 제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행복하게 할까’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 돌아와 집 앞 교회를 찾아가 등록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배와 기도의 자세가 달라졌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됐다.
주님과 동행하는 일터, ‘선한 청기지’로
임 원장은 치료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다고 했다. 구강 혹을 조기 발견해 건강을 되찾은 한 환자는 하나님께 오래전 서원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뒤늦게 목회자가 됐고, 심각한 치아 손상으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한 청년은 치료 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환자들이 작은 회복에도 감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하나님께서 나를 청기지로 사용하시며 일터에서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익투스치과는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을 돕고 지역 복지관과 협력해 취약계층과 장애인에게 치과 치료를 해주고 있다. 또 ‘성경 필사’를 작성한 직원들에게 선물을 주며 신앙 성장을 격려한다.
임 원장은 “교회가 지역에 뿌리내리듯, 병원도 지역사회와 깊은 유대를 맺고 함께 살아간다”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안에서 환자를 정성껏 돌보고 치료하며 일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의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