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의 로보틱스 업체 인수부터, CES에서의 엔비디아의 피지컬 인공지능(AI) 공개까지. 지난해 말부터 국내외 로봇 산업에서는 대형 뉴스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현실은 그다지 밝지 않다. 엔비디아가 휴머노이드 개발 파트너로 언급한 14개 업체 중 중국 업체는 7곳이나 있었지만 한국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전 세계 국가 중 제조업 로봇 밀도 1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국내 산업용 로봇 시장의 80%는 외국산 제품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추격해야 하는 것이 한국 로봇 산업의 현실.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김진오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은 공략 분야는 좁히고, 판매 시장은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회장은 38년 동안 로봇 분야에서 기업 연구원, 연구 교수, 스타트업 대표로서 두루 활약해 온 멀티 플레이어다. 지난 2008년에는 로봇계의 노벨상 ‘조셉 엥겔버거’상을 수상했다. 그는 “세분화된 작업이라도 판매처를 전 세계로 넓히면 조 단위 매출이 가능한 것이 로봇 시장의 힘”이라며 “로봇과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그 방향으로 전력 질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CES의 큰 줄기는 휴머노이드와 로봇이었다.
“빅테크가 각자의 특화 분야를 가지고 휴머노이드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자사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새로운 판매처를 찾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들고나온 것은 GPU를 통해 로봇이 학습할 실제 세계 데이터를 만들어주는 피지컬 AI이다. 오픈AI는 거대언어모델(LLM) 기술을 통한 로봇과 인간의 원활한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테슬라는 실제 세계를 돌아다니며 데이터를 수집해 발전시켜온 자율주행의 학습 방법을 휴머노이드에 적용하고 있다.”
-휴머노이드의 시대는 언제 오는가. 휴머노이드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분야는 어디인가.
“휴머노이드가 어떤 순서로 인간 생활에 자리 잡을지에 대해 개발하는 업체들조차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간단해 보이는 드론조차 애플리케이션(응용 기능)이 500개에 달한다.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그대로 활동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분야는 수천, 수만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교육, 연구 분야에서 우선 도입될 것이라 보고 있다.”
-중국 휴머노이드 기술력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중국은 정부가 10년 전부터 휴머노이드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수십 개의 휴머노이드 업체들끼리 시장에서 극한 경쟁을 하도록 해 뒤처지는 업체는 정리했다. 동시에 모터, 감속기 등의 부품은 규격을 통일해 대량생산하는 부품 회사의 경쟁력을 키웠다. 싸고 질 좋은 식재료(부품)를 주고 각자의 식당(휴머노이드 업체)에서 맛있게 조리하도록 맡기는 방식이다.”
-한국 업체들은 어떻게 추격해야 하는가.
“도전자인 한국은 모든 휴머노이드 기술력을 따라잡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휴머노이드가 우선 도입될 작업을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 시장, 특히 로봇을 활용하는 방법에 열려있고 관련 규제도 적은 미국 시장에서 매출을 확보해야 한다. 가능성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해외에서 판로를 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로봇 기업은 소젖을 짜는 로봇 착유기로 매년 1조원 매출을 기록하는 네덜란드의 렐리(Lely) 사다. 로봇이 자동으로 소젖을 짜고, 퀄리티를 분석한 후 분류하고, 신선하게 보관하는 솔루션으로 하나의 업체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한국 시장과 로봇 산업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로봇의 개발 못지 않게 작업과 환경, 인간과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로봇 시스템 개발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로봇 기술의 불완전함은 시스템으로 일부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 어디에서든 다닐 수 있는 로봇이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걸을 수 있는 로봇을 투입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바퀴가 달린 로봇이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어주면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투입 효과를 낼 수 있다. 때문에 인간과 로봇의 역할을 정의하고, 이에 맞춰 작업과 공간(작업현장)을 혁신하는 역할을 맡는 ‘시스템 아키텍처’(SA) 업체가 한국에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AI 자율제조와 같은 국가 연구 과제를 더욱 많이 만들어 SA 업체를 수백 개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지능형 로봇 100만대 보급에 힘쓰고 있다. 왜 사회에 더 많은 로봇이 필요한가.
“2030년까지 생산인구가 2021년 대비 320만명 감소한다는 전망이 있다. 제조업 등 현장에서 일할 사람은 부족해지고, ‘중국제조 2025’를 실행해나가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은 심화되는 현실에서 로봇이 제조업 경쟁력을 10배 이상 높일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사람은 8시간만 일하고 로봇은 24시간 일하도록 해야 한다. 외국 인력을 값싸게 들여오는 방법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로봇 산업 인력 부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로봇활용은 기본적으로 융합학문이다. 식품·생명과학·헬스케어 전공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6개월 로봇을 교육했더니, 각자 전공 분야에서 로봇이 잘할 수 있는 작업을 로봇공학 전공자들보다 빨리 찾아내더라. 정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함께 로봇직업교육센터를 만들고 산업 인재를 키우려 한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