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울 구로구의 한 작은 공간에서 12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예배의 출발선에서 푯대가 돼준 성경 구절이 있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이다. 이 교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선 흔히 보이는 교회의 건물 외경, 담임 목회자의 얼굴, 예정된 사역 안내 등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칠흑 같은 어둠에서 빛줄기가 새어 나오며 성경 구절을 비춘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이 말씀에 영감을 받아 ‘영광을 보다(視光)’ 라는 의미의 시광교회(이정규 목사)가 세워졌다. 최근 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이정규(47) 목사는 “젊은 청년들이 많은 교회치고 한문으로 이름 짓는 교회가 없는데 이렇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이름이 힙하다고 교회가 힙하진 않다는 걸 청년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며 사역 이야기를 들려줬다.
복음, 공동체 그리고 서울
시광교회 사역의 핵심은 세 가지 키워드로 집약된다. 복음과 공동체, 그리고 서울이다. 이 목사는 “오래 신앙생활을 하신 성도 중에도 생각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다”며 “이 부분을 잘 새기는 것이 복음을 바로 아는 첫걸음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복음만큼 중요한 핵심어가 공동체다. 이는 청년 세대 전도와 직결돼 있었다. “2000년대생 이후부터는 태어나서 교회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들에게 교회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게 아니죠. 언론이나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만들어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환대해주는 공동체를 만나면 반전을 느끼는 거죠. 실제로 교회에 처음 와본 청년 중에 ‘여기 계속 오고 싶은데 한 달에 회비가 얼마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어요(웃음). 이런 집단은 처음이었던 겁니다.”
이 목사는 서울을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로 정의했다. 이는 선교적 교회로서의 시광교회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그는 “해외 선교, 아웃리치(지역 봉사 활동)는 많이 가는데 공동체 내에서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환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교 활동을 많이 하지만 선교적이진 않은 셈”이라고 했다.
이어 “신앙 없는 청년들이 복음과 공동체를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으려면 교회 스스로 ‘선을 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단순히 물리적 경계를 넘어 다양한 문화적, 신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다양한 배경의 청년들이 살아가는 서울에서 선을 넘어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는 것이 시광교회 성도들의 DNA인 셈이다.
선을 넘는 청년 공동체
지역 교회를 넘어서는 청년들의 공동체로 자리 잡은 시광교회는 단일 교회의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지역에 작은 공동체를 세우는 ‘분립 개척 운동’을 통해 복음의 확장을 꾀한다. 이 목사는 “교회가 성장할지, 작게 남을지는 늘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마련”이라며 “중요한 것은 다양한 지역에 공동체를 세우고 선을 넘어 비신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가을은 시광교회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은 시기다. 문래 캠퍼스 한 곳에서 집중하던 목회가 신촌 캠퍼스로 확장하며 ‘멀티 사이트 교회’로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이 목사는 두 가지 요인을 꼽았다. 복음을 모르는 다양한 청년들이 밀집된 지역, 그리고 이 지역에서 성도들과 어울리며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준비된 리더다.
성도 24명으로 시작한 신촌 캠퍼스는 1년 6개월여 만에 140여명이 모이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문래 캠퍼스를 포함하면 평균 연령 30세의 청년 성도 900여명이 함께 한다. 이 목사는 주일이면 문래와 신촌 캠퍼스를 오가며 강단에 선다. 이번에도 그는 ‘선을 넘다’의 개념을 강조했다.
“교인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만을 부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광교회 성도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비신자들에게 경계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를 준비하는 것과 그렇게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어요. 신촌 캠퍼스가 그 결과물인 겁니다.”
선을 넘는 사랑, 분립 개척으로
시광교회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를 위한 준비 과정은 소그룹 모임, 제자 훈련에 오롯이 반영된다. 목회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다독가로 알려진 이 목사의 설교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학자들의 저술과 발표 내용들이 인용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포용하고 공감을 나누게 하기 위해서다.
주보 한 편에 자리 잡은 ‘소그룹 나눔’ 코너에도 CS 루이스, 필립 얀시, 티시 해리슨 워런 등이 전한 이야기를 담아 이를 토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다. 2년 4학기 동안 진행되는 제자훈련, 일과 신앙, 예술과 삶 등을 주제로 성경의 교리를 배우는 시광 아카데미 등이 성도들에게 영적 깊이를 더해준다.
올해 시광교회는 또 다른 전환점을 기대하며 준비에 나선다. 복음이 필요한 또 다른 지역 청년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목회자와 성도들을 파송해 분립 개척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선을 넘을 준비를 하는 셈입니다. 개척에 대한 열망, 공동체를 향한 사랑을 품은 영적 용사들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