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될 당시 북한 병사(26세 저격수)는 턱과 팔에 부상을 입은 채였다. 투항의 표시로 전투복에 달려 있던 수류탄과 칼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더니 ‘이건 갖고 있겠다’는 몸짓을 했다고 한다. 적의 총구 앞에서도 버리지 않으려던 그것은 소시지였다. 먹을 것이니 휴대를 허용하고 이송 차량까지 끌고 갔을 때, 그가 갑자기 패닉에 빠졌다. 군용차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다 옆에 있던 콘크리트 기둥을 머리로 들이받고는 의식을 잃었다.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소시지를 움켜쥐며 살고자 했던 이가 포로가 됐다는 현실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모습은 쿠르스크의 북한 병사들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살고 싶다는 본능과 잡히면 죽으라는 명령이 충돌할 때 후자를 택할 만큼 북한이란 국가의 세뇌는 집요했다. 4000명이 사상할 동안 생포된 건 겨우 두 명뿐이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북한군의 ‘자발적 죽음’을 기꺼이 투항하는 러시아군과의 가장 큰 차이로 꼽고 있다.
전쟁 투입 초기에는 ‘북한군=총알받이’란 평가가 많았다. 드론에 허둥대고, 들판에서 무리지어 노출을 자초하고, 병사들을 끊임없이 적진에 돌진시키는 옛 소련군의 ‘인간 파도’ 전술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단기간에 큰 희생을 치른 이들이 이제 “실전의 충격을 극복하고 전쟁에 적응해간다”는 외신 보도가 최근 이어지고 있다. 한 예로, 병사 한 명을 벌판에 세워 드론을 유인한 뒤 숨어 있던 이들이 격추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전투 중 확보한 북한군 소지품에는 김정은의 편지 외에도 드론 대응책을 비롯해 그간의 전술적 시행착오와 개선안을 빼곡히 정리한 한글 문서도 있었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첨단의 전장이라는 우크라이나에서 북한군은 지금 전쟁을 배우고 있다. 이 파병을 먼저 제안했다는 김정은이 원한 것은 러시아의 미사일 기술보다 이런 실전 경험과 현대전 노하우일지 모른다. 언젠가 한반도에서 써먹을 수 있는.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