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맞이했지만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일 것이다. 탄핵 사태 여파로 국정은 혼란스럽고, 명절 경기도 실종되면서 국민들 삶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나라 밖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때 정치권이라도 중심을 잡아 국정을 뒷받침하고 경제도 챙겨야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연일 진영 대결을 부추기느라 눈코 뜰 새 없다. 거기에 더해 조기 대선론까지 불붙으면서 민생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국정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정치권마저 정쟁에 매몰되고 ‘대선 블랙홀’로 빠져들면 위기는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정치와 민생을 구별하고, 민생 앞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여야도 이런 점을 감안해 명절 기간 민심 청취에 적극 나선다고 하니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장사가 안 돼 상가 곳곳에 ‘임대’ 표지가 나붙고, 외식은 물론 필수품조차 사기를 주저하는 소비 절벽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직접 실감해보기 바란다. 그렇게 한계 상황에 놓인 국민들 삶을 생생히 살펴 설이 지나면 기존의 대립 정치에서 벗어나 민생 정치에 매진해야 한다.
여야 지도부는 설을 맞아 ‘민생 회복’ ‘내수 경기 활성화’(국민의힘)에, ‘회복과 성장’ ‘실용주의 정책’(더불어민주당)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잘 잡았지만 문제는 실천일 것이다. 여야가 진작에 그럴 의지가 있었다면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K칩스법이나 소상공인 부담 완화 등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 여지껏 국회에서 잠자고 있진 않았을 테다. 또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가 너무 어렵다면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주문한 추경 편성 문제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야가 진짜 민생을 챙길 의지가 있다면 설 직후 여야정 국정 협의체부터 속히 가동해야 한다. 또 2월 임시국회에선 정쟁성 법안은 미루고, 시급한 민생 입법 처리에 주력해야 한다. 아울러 여야 모두 탄핵 정국에서 한발짝 떨어져 냉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내란 수사나 탄핵심판은 사법부에 맡겨 놓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려야 정쟁도 줄고 민생 입법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