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 댕! 댕!”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는 매시간이면 이처럼 어김없이 울려대는 대성당의 종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이토록 성당의 존재가 드러나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기독교는 믿되 교회는 나가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 또한 많은 곳이 유럽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또 유럽을 방문한다면 종소리 말고 한 가지 더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바로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라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다. 최근 한 달간 유럽 주요 국가들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유럽 방문에 앞서 찾아본 각종 유튜브 콘텐츠나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는 꼭 이 같은 말을 덧붙였다. 실제 기차로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현지인, 관광객 여부를 막론하고 자신의 짐을 도난당할까 싶어 제 곁에서 짐을 최대한 떨어뜨려 놓지 않으려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물며 현지에서 오래 산 관광가이드조차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고백할 정도니 말 다했다.
수천 년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 속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과 유적들로 가득 찬 유럽 도시의 이면이었다. 파리 로마 프랑크푸르트 제네바 등 한 달간 유럽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며 때론 대성당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압도됐고, 섬세함과 정교함의 끝이라 칭송받는 유명 예술품을 볼 때면 당시 예술가들의 재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놀라움 끝에는 늘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연 주님이 좋아하셨을까.’
대성당과 같은 역사적 유적지의 한쪽에는 늘 당시 황제나 교황과 같은 절대 권력자의 이름과 함께 그들의 공치사가 적혀 있기 마련이었다. 성당 한쪽 높은 자리에서 마치 군중을 훈계하듯 아래로 내려다보는 이들 형상의 석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압도감도 잠시, ‘금과 대리석으로 화려하고 높게만 쌓아 올린 교회의 모습을 주님은 과연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을 소시민들의 삶을 유추해 볼 때 금으로 치장한 예배당이, 더 나아가 종교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싶었다. 또 찬란하고 품격 있는 선대의 기독교 유물과 역사를 소유한 지금의 후손들이 관광객 등 외부인을 향해 그에 걸맞은 포용과 품격을 보여주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고개가 저어졌다. 유적지 사이사이 거리 곳곳에서 버젓이 마약 대마초를 파는 가게들만이 화려한 네온사인을 비출 뿐이었다.
바티칸의 화려한 성베드로대성당보다 더 깊게 뇌리에 남은 건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한쪽, 며칠을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수건 하나에 의지해 유럽의 강추위를 피하던 한 흑인 여성 노숙인의 모습이었다. 그저 ‘왜 난 거리 위의 그들에게 내 품 안에 고이 간직하던 핫팩 하나 건네주지 못했나’ 하는 반성과 후회만 밀려왔다. 이는 곧 ‘성당의 높은 첨탑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절대 권력의 석상이 말하려는 가치가 과연 후대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건 유물이라는 하드웨어인가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가톨릭이든 다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자며 종교개혁을 외치고 등장한 개신교든, 모두 지금의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에 책임이 무겁다.
15세기 말 종교가 무너지고 인본주의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프랑스의 노트르담대성당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는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유명한 노래가 나온다. 가사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돌 위엔 돌들이 쌓이고 하루 또 백 년이 흐르고 사랑으로 세운 탑들은 더 높아져만 가는데….”
과연 대성당 위 높은 첨탑에 세워진 십자가를 든 자신의 동상을 본 예수그리스도는 이를 좋아했을까. 새해를 맞아 나부터 나만의 대성당을 쌓는 일에 집중하기보단 소외된 곳을 향하며 ‘예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더 집중해보자고 다짐해본다.
글·사진=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