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41) PGA 마스터스 출전… ‘동양인 최초 톱3’ 기록 세워

입력 2025-01-31 03:03
최경주 장로가 2016년 제주 핀크스골프클럽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 3라운드 11번 홀에서 세컨드샷 후 환하게 웃고 있다. 뉴시스

2004년 세계에 태극기와 최경주(KJ Choi) 이름 석 자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프로골프(PGA)에는 4대 메이저 대회가 있다. ‘마스터스 토너먼트(마스터스)’ ‘PGA 챔피언십’ ‘US오픈’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이다. 이중 마스터스는 매년 4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다. 특히 11 12 13번 홀 코스가 숲을 시계 방향으로 끼고 있는데 ‘아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려워 선수들에겐 ‘아멘 코스’로 불린다.

나도 최종 4라운드 때는 너무 힘들어 아멘이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어려운 11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다.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AP통신은 ‘2004 마스터스 최고의 샷’으로 꼽았다.

사실 11번 홀 티 박스에 올라설 때까지만 해도 선두권과 거리가 멀었다. 4라운드 전반에 2오버파를 친 뒤 10번 홀에서 어렵게 파 세이브를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10번 홀에서 11번 홀 티 박스로 가는 길에 아내가 불쑥 나타나 샌드위치를 건넸다. 코스의 성격상 갤러리들이 잘 오지 않는 길인데 아내가 나타나자 기분이 좋았다.

“괜찮아요. 잘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치세요.”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싱긋 웃어주고는 티 박스에 올라서서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이번에는 공에 진흙이 안 묻게 해주세요.” 지난 사흘 내내 티샷 한 공에 진흙이 묻는 바람에 번번이 보기를 범했다. 샷을 하고 가 보니 다행히 공이 깨끗했다. ‘감사합니다.’

당시 캐디였던 앤디가 그린까지의 거리가 215야드(약 196m)라고 알려줘서 4번 아이언을 달라고 했다. “KJ, 5번 아이언으로 풀스윙하면 충분해. 믿고 쳐 봐.” 앤디는 채를 짧게 잡으라고 했다. 나는 노련한 캐디의 조언을 믿고 5번 아이언을 손에 쥐었다. 11번 홀에선 대개 공이 떨어지면 물이 있는 왼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감안해 페이드샷으로 쳤다. 공이 깃대를 향해 날아가는 걸 보고 처음으로 파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린에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그린 위에 공이 없었다.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며 하늘을 향해 높이 뛰었다. 이후 13번 홀에서는 버디를 기록해 아멘 코스에서만 3타를 줄이고 14 16번 홀에서도 버디를 보태 6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세계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마스터스에서 단독 3위를 기록했다. 동양인 최초 톱3 입상이었다. 톱3 기록은 2020년 후배 임성재가 공동 2위를 기록하기 전까지 역대 최고 성적으로 남았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