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상식의 혁명

입력 2025-01-27 00:31

바이든 앞에서 대선 조작 주장 충성도 낮은 관료 해고 예고
멕시코, 파나마, 덴마크 공략 결국 중국 견제하는 패권 경쟁
진영 싸움 시궁창 속 우리 정치 상식 빈자리를 음모론이 채워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지난주부터 시작됐다. 취임 연설부터 그는 거침이 없었다. 흔한 외교적 수사 하나 없이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기 때문인지 이런 ‘미국 우선주의’ 수사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30분 남짓의 공식 취임사와 오찬장으로 이동하다 이뤄진 비공식 연설에서 오히려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상식의 혁명(revolution of common sense)’이라는 공약이었다. 이는 그가 1기 행정부 때부터 강조한 ‘적폐 청산(drain the swamp)’ 의제의 연장선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상 뒤편에 앉아 있던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등 민주당 인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민주당이 공들여 온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행정조치 폐기를 선언했다. 아울러 2020년 대통령 선거는 완전히 조작됐다며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 있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불편했던 속내를 드러냈다. 지지층을 더 확고히 다진 그는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측근 인사들로 내각과 참모진을 구성했다. ‘상식의 혁명’에 동조하지 않는 전 정부 인사와 직업관료 등 1000여 명의 해고도 예고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외교·안보 정책에도 그의 ‘상식의 혁명’ 구상이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마약 카르텔을 ‘외국 테러 조직’(FTO)으로 지정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미국의 최대 마약 공급처인 멕시코가 직접 타격을 받겠지만, 행간을 보면 궁극적 목표는 중국이다. FTO 지정은 단순히 마약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가 아니라 중국에 대한 압박 수단, 특히 최근 들어 중국이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미국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강력한 합성 아편유사제 펜타닐의 전구물질 최대 공급처다. 중국에서 생산된 전구물질은 멕시코의 카르텔로 수출된 후 펜타닐 완제품으로 가공돼 미국에 반입된다.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은 중국이 전구물질 수출을 충분히 통제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FTO로 지정되면 전구물질을 공급하는 ‘상식 밖의’ 중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금융 제재 등을 받게 된다.

뜬금없어 보였던 파나마 운하 문제도 중국에 대한 견제 포석이 드러난다. 그는 중국이 통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며 1904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이 직접 관리하다 파나마 정부에 넘겨준 운하 관리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최근 일대일로 전략에 따라 중국 국영 기업이 파나마 운하 주변의 항만 인프라와 물류 네트워크에 대규모로 투자함으로써 그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다. 2017년 파나마가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도 트럼프의 위기 의식을 자극했다.

취임식 당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는 돌출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당선인 시절부터 그는 그린란드에 미군을 주둔시켜 러시아의 대서양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봉쇄할 뿐만 아니라 그린란드에 매장된 무한정의 희토류를 확보해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여기에는 ‘근(近) 북극 국가’를 자칭하며 북극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꾀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상식의 혁명’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의제(擬制)집권 야당’의 입법 폭주와 그에 대한 반발로 선포된 대통령의 계엄령이 ‘상식 초월’의 한계가 아니었다. 내란죄로 대통령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법원이 전국에 생중계한 ‘적법절차 실종 사건’, 그 결과 발생한 초유의 법원 난입 사태 등은 건전한 법상식이 진영 싸움의 시궁창에 빠졌다는 걸 말해준다. 중국 해커의 선거 개입설 역시 상식을 초월한다. 우리는 정말 중국의 영향력 공작으로부터 안전한 건가. ‘명찰’ 없이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이 중국에서 파견 나온 ‘공안’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퍼지고 있지만, 사실 음모론은 죄가 없다. 상식이 사라진 빈자리를 어쩔 수 없이 채우는 것뿐이다. 그에 따른 분노와 좌절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