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빠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의지가 예상했던 것처럼 강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사흘 만에 북·미 정상외교를 다시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문제보다는 장기화되고 있는 두 개 전쟁의 출구 모색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출범 초기부터 북·미 정상외교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양새다.
북·미 정상외교 재활성화 가능성이 부각됨에 따라 북핵 협상 재개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핵군축 협상, 이른바 ‘스몰딜(small deal)’을 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당시 대북 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알렉스 웡 전 대북특별대표를 백악관 국가안보 수석부보좌관에 임명했는데, 이를 두고 북핵 협상 재개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또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후보자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하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인준 청문회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며 보다 광범위하게 대북정책을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대신 북한의 핵 능력을 감소시켜 통제하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설정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핵 협상 재개 시 군축 협상이 추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워싱턴에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진지하게 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미국 본토를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북·미 협상 재개가 가시화될수록 핵군축 협상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로 인한 외교적 충격과 이후 고도화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고려할 때, 북한은 재협상의 문턱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감소와 그에 대한 상응조치를 ‘단계적·동시적’으로 시행하자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1기 행정부에서 북핵 협상을 경험한 트럼프 대통령도 북핵 협상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인식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미국 측 재협상의 문턱을 낮춰 북핵을 관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핵 협상의 최종 목표(end state)를 모호하게 유지한 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감소와 그에 대한 상응조치(대북 경제제재 완화 및 해제와 북·미 관계 개선)를 ‘동시적·병행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관리를 부각시키며 대화를 제안하면 평양은 협상장으로 되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고 핵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반면 경제제재 해제와 미국과의 관계 개선 등 생존과 번영을 위한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망은 한국에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핵군축 협상 가능성에 대비한 ‘플랜 B’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북·미 핵군축 협상이 진행될 경우 수용할 수 있는 북한 핵·미사일 능력 감소 수준은 어디까지이며, 이러한 양보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