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시 연락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북한은 별다른 대미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는 등 대미 협상에 앞서 ‘몸값 부풀리기’에 집중할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호적 메시지를 내놓았기에 김 위원장의 고심도 깊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2~23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2차 회의를 진행했다고 24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에 열린 이번 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을 통한 대미 메시지가 기대됐으나 김 위원장은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 내용 중 미국 관련 언급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외교 재개를 시사한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료를 염두에 둔 조처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취임 초부터 (북·미 대화) 의지를 보인 것은 단순한 대북 관리를 뛰어넘어 직접 문제 해결로 나아가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라며 “전쟁 종료를 위해 러시아에 군대를 보낸 북한의 입장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은 구체적 협상안이 도착할 때까지 의견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만 보고 미국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어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실무선에서 접촉을 시도할 것이고 북한은 구체적인 협상 조건을 따져볼 것”이라며 “북한의 요구조건을 미국이 수용하지 않으면 협상장에 쉽게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신 미국을 겨냥한 핵무기 준비, 러시아와의 밀착 강화 행보 등을 이어갈 전망이다. 북·미 협상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당분간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능력을 진전시켜 나가고 미국이 요구를 들어주는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기존의 강 대 강 대응 기조를 유지하면서 수위를 조절한 자위적 핵 무력 고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ICBM 발사 준비는 계속되고 있다”며 “(러시아에) 추가 파병 준비를 가속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우호적 발언 탓에 김 위원장이 마냥 공격적 태도를 보이기는 어려워 딜레마에 빠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원래대로라면 ICBM을 쏘면서 핵 능력이 있다는 걸 과시해야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이 나오면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면서 “김정은의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