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그러면 나의 절망을 말해줄 테니

입력 2025-01-24 02:29

비유가 아니다.
비행운에 가려질 만큼
오늘 자른 손톱이 저것만큼 가늘었어요.
당신은 자주 손톱을 자르는 사람이군요.
손톱 밑에 붉은 것이 묻어 있는 걸 보았다.
내가 나를 피 흘리게 만든다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어요.
자는 중에도 피가 흐른다는 걸 느껴요.
그가 손톱으로 나의 팔을 긁었다.
가로등 빛 아래는 해석의 여지가 많고
차들은 차선과 겹쳐 있다
왼쪽으로 치우친 차 안에서도 사람들은 한가운데에 놓여있다고 느낀다.
시간이 가까이 있어요
공간은 멀지 않고
당신은 내게서 얼마만큼 겹쳐 있습니까.
물병이 뒤바뀌었다는 걸 알아채고
나의 신발이 무엇인지는 구분할 수 있지만
다음에도 만나자.
이 약속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당신에게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네가 내게서 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너의 팔이 긁힌 세기로 나를 기억해줘.
뒤늦게 붉은 줄이 그어졌다.
헤어지는 장소에서 오래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어줄 것.
내게서 우리가 뜯겨 나간다.
미래의 생애가 될 감정이다.

-봉주연 시집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