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카드 만지작… 재정준칙 법제화 사실상 물건너 갔다

입력 2025-01-24 02:46
국민일보DB

야당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요구에 이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추경 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당분간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는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추경 편성을 압박했다. 진 의장은 “기획재정부가 어제 ‘현재 추경 사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문을 냈다”며 “21일 최 권한대행 부총리가 ‘국정협의회(국회·정부 협의회)가 열리면 추가적 재정 투입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던 발언을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이라고 했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추가 재정 투입에 대해서는 국회·정부 국정협의회가 조속히 가동되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재정의 기본 원칙하에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직접 추경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최근 제기된 추경 요구에 정부가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해석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6일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회의 후 추경 편성은 빠를수록 좋다며 구체적 규모(15조~20조원)까지 언급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 입장과 달리 추경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 경우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 역시 또다시 물 건너갈 수 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가 일정 수준 이상 되지 않게 두는 것으로, 관리재정수지 한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하고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초과할 경우 이 한도를 -2%로 더 줄이는 내용이 핵심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준칙을 법제화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그간 정부와 정치권은 재정준칙 법제화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때부터 매번 법제화에 실패했다. 재정 운용의 탄력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당시 관련 논의가 물살을 타는 듯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연이어 추경을 편성하며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윤석열정부도 취임 초기에는 건전 재정을 강조하고 지난해 재정준칙 법제화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잇따른 대규모 세수 결손과 내수 부진, 비상계엄 등이 겹치면서 결국 국가채무를 늘려야 하는 추경을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탄핵 사태로 인한 정치 대립에 내수까지 계속 침체하면서 이번 정부에서도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정권 역시 공약 사업, 내수 침체 타파를 명분으로 추경을 검토할 수 있어 재정준칙 법제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재정 적자가 커지면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쳐 국가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큰 틀에서라도 재정준칙은 법제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윤 기자 k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