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서 약 5년간 ‘자경단’이라는 범죄집단을 결성해 200명 이상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성착취물 제작을 강요하고 성폭행 등을 저지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불법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제작에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접근해 ‘지인능욕방’ 가입을 미끼로 유인한 뒤 이들의 신상을 털어 협박하고 성착취를 일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찰청은 23일 ‘자경단’ 총책 A씨(34) 등 조직원 14명을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성착취물 제작, 강간 등)과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등) 등의 혐의로 검거하고 A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조직원은 16세 중학생을 포함해 10대가 11명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또 이들의 텔레그램 ‘지인능욕방’에 참여하기 위해 지인들의 허위합성물을 제작해 ‘자경단’에 넘긴 40명을 검거하고 B씨(32)를 구속 송치했다. 특정된 73명 중 나머지 33명은 추적 중이라고 경찰은 덧붙였다.
자경단 일당은 2020년 5월부터 2025년 1월까지 SNS상에서 지인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제작에 관심을 보이는 남성들을 범행 대상으로 물색했다. 이들을 텔레그램방으로 유인해 신상정보를 캐낸 뒤 돌변해 성범죄에 가담하려 한 사실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여성 피해자의 경우에도 호기심에 접근한 이들을 텔레그램방으로 유인한 뒤 신상정보를 털었다.
피해자들의 약점을 잡은 총책 A씨는 이들에게 성착취물 제작을 강요했다. 또 1시간 단위로 일상을 보고하거나 반성문을 작성하도록 하면서 ‘심리적 지배’를 해왔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A씨 지시를 어길 경우 피해자들은 나체·자해 영상을 제출해야 했다. A씨는 10대 여성 피해자 10명을 대상으로 ‘남자와 성관계를 해야만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속인 뒤 이들을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총 234명으로 이 중 10대가 68%(159명)를 차지했다. 20대 이상은 64명, 인적사항 미상은 11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0년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조주빈 일당의 ‘박사방’ 피해자 73명의 3배 넘는 규모다. 또 미성년 여성에게 피해가 집중됐던 조주빈 일당과 달리 피해자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성착취가 이뤄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자신을 ‘목사’로, 다른 조직원들은 각각 ‘집사’ ‘전도사’ ‘예비전도사’로 계급을 나눠 피라미드식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새로운 피해자를 끌어들이거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면 계급을 올려주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성착취 피해자가 가해 조직원이 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드라마 ‘수리남’ 주인공이 목사 역할을 하는 데서 착안해 조직을 운영했다”며 “계급을 다양하게 나눈 건 외부에 조직이 크다는 걸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A씨는 4년제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했다. 일과 이후 텔레그램을 집중 연구했고 박사방 등 성착취 범죄를 모방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에 대한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 소유자로 보인다”며 “심리 분석과 프로파일링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A씨의 신상공개 심의위원회 결과를 바탕으로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경찰은 A씨 범행 동기가 영리 목적이 아닌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검거 직전까지도 “저 잡을 수 있어요? 헛고생하지 말고 푹 쉬세요” 등 경찰을 조롱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24일 오전 A씨를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국내 수사기관이 텔레그램 본사로부터 범죄 관련 자료를 받은 첫 사례다. 경찰은 수사 초기 텔레그램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자 텔레그램 측 운영자를 대상으로 내사에 착수했다. 결국 텔레그램은 지난해 9월 관련 자료를 경찰에 제공했다.
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