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일단 성공한 고려아연, 법적 다툼은 불가피

입력 2025-01-24 01:21

고려아연이 23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영풍이 보유한 지분 25%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고려아연 측이 임시 주총 전날 기습적으로 손자회사를 통해 영풍 지분 10.3% 취득해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면서 상법에 따라 영풍의 주식 의결권을 제한하는 효력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상법과 자본시장을 유린한 위법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기덕 고려아연 이사회 의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임시 주총에서 “본 주총에서 주식회사 영풍이 보유한 당사 주식 526만2450주(25.42%)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했다. 이는 고려아연이 전날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통해 최윤범 회장 등 최씨 일가와 고려아연 계열사인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0.3%를 장외에서 취득했다고 공시한 데 따른 것이다. 상법 369조 3항은 회사·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SMC는 고려아연이 호주에 세운 선메탈홀딩스(SMH)를 통해 설립한 손자회사로, 고려아연은 상법 342조 3항에 따라 SMC를 자회사라고 본다. SMC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와 영풍정밀이 보유한 영풍 지분을 획득하면서 ‘고려아연→SMH→SMC→영풍→고려아연’의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영풍의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 행사를 제한했다.

주총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오전 9시 시작 예정이었던 주총은 중복 위임장 확인 문제로 오후 1시 50분에야 시작됐다. 고려아연 노조원들은 주총장 앞 로비에서 MBK와 영풍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고려아연 지켜내자”고 외쳤다.

박 의장이 개의 선언 이후 영풍의 의결권 제한을 공식화하면서 영풍 측 변호인단은 거세게 항의하며 임시 주총 연기 표결을 요청했다. 하지만 고려아연 측이 연기 표결에서도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겠다고 하자 요청을 철회했다. 이후 집중투표제 도입 및 신규 이사 선임 안건 등에 대한 표결이 진행됐고 최 회장 측의 안건이 모두 가결됐다. 제1-1호 의안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은 찬성률 76.4%를 기록했다. 이사 수를 19명 이하로 제한하는 제1-2호 안건은 찬성률 73.2%로 통과되면서 MBK·영풍 측의 이사회 장악은 불발됐다.

MBK·영풍 측은 “상호주 소유에 관한 상법 조항들은 국내 법인인 주식회사 사이에만 적용된다”며 SMC는 외국기업이자 유한회사라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SMC는 유한회사가 아닌 주식회사”라고 반박했다. MBK·영풍 측은 이른 시일 내로 임시 주총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