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회의 결과물에서 종전에 들어갔던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22일(현지시간)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가 최근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언급한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트럼프 1기 때처럼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쿼드 외교장관 공동성명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북한 관련 기술은 없었다. 이 성명은 전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포함한 쿼드 4개국 외교장관이 회의 결과로 채택한 문건이다. 2019년 시작된 쿼드 외교장관회의와 2021년부터 매년 1회 이상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공동성명에 빠짐없이 들어간 의제였다.
이번 공동성명은 영문 1000자 수준으로 이전 성명들보다 짧게 작성됐고, 특정 국가가 언급되지도 않았다. 다만 기존 성명에서 중국을 겨냥해 사용된 표현인 ‘무력이나 강압으로 현상 유지를 변경하려는 일방적 행동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문장은 포함됐다.
앞서 트럼프와 헤그세스의 ‘북한 핵보유국’ 발언에 이어 쿼드 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빠지면서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시드니 사일러 선임고문은 이날 팟캐스트에서 트럼프의 ‘북한 핵보유국’ 발언에 대해 “그와 그의 안보팀이 지난 4년간 진화한 북한의 위협을 살펴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계속 무기고를 질적·양적으로 늘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일러 고문은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시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앞으로의 길은 김정은의 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한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엔 “트럼프 팀은 한국을 파트너로 유지하는 가치를 인정할 것”이라며 ‘한국 패싱’ 가능성을 낮게 봤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3일 루비오 장관과 처음 통화하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통화에서 “70여년간 굳건히 이어온 한·미동맹을 미국의 새 행정부하에서도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한·미동맹이 한반도뿐 아니라 역내 평화·안보의 핵심축”이라고 답했다. 특히 자신이 부임한 지 24시간 안에 조 장관과 통화한 것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두 장관은 한·미·일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이 철통같이 확고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또 이른 시기에 워싱턴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김철오 박민지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