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는 10월쯤부터 충북 진천 한 편의점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부터 활기가 넘친다. 칠순이 넘은 사장님이 새벽부터 ‘특제 양념’을 준비하고, 어묵을 정갈하게 올려둔다. 크지 않은 점포 안에서는 “엄마, 어묵 먹으러 왔어요”라는 손님들의 인사말이 쉴 새 없이 들린다.
21일 충북 진천의 세븐일레븐 진천신척산업점에서 전국 어묵 매출 1위를 달성한 최영화(72) 경영주를 만났다. 어묵 매출 1위는 단숨에 이뤄낸 게 아니었다. 간단하지 않은 일인 만큼 시간이 필요했고 연구를 해야 했다. 최 경영주는 “수년의 시행착오 끝에 어떻게 해야 어묵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어떤 양념을 써야 하는지 알아냈다”고 말했다.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로 9년째 이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 경영주는 점포 영업관리 담당자의 제안으로 어묵을 팔기 시작했다. 그는 다양한 겨울 간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근 다른 편의점에선 어묵을 파는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최 경영주는 “어떤 편의점은 1년 정도 어묵을 팔다가 포기했다. 생각보다 어묵을 관리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정성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 경영주의 고매출 비결 중 하나는 특제 양념이다. 매일 점포 옆 텃밭에서 재배해 말린 고추와 대파 등을 활용해 소스를 만들어둔다.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어묵에 특히 어울리는 간장도 찾아냈다. 단골들은 하나같이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맛에 중독됐다고 입을 모은다. 최 경영주는 “소스를 매일 한 통 가득 넉넉히 만들어두는 데 워낙 인기가 많아 하루를 넘기는 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 경영주는 도시락을 먹고 가는 손님에게도 어묵 국물을 떠다 준다. 국물맛에 반한 사람들이 결국 어묵꼬치를 손에 쥐게 된다. 어묵의 쫄깃한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대나무 발을 별도로 준비하기도 했다. 어묵을 냉동고에서 꺼낸 후 3분 정도 국물에 담가뒀다가 퍼지지 않도록 대나무 발 위에 올려두는 게 노하우다. 남편과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비법을 전수했다.
매년 10월부터 3월 말까지 이 점포에서 하루 동안 팔리는 어묵은 최소 100개 이상이다. 일반 점포와 비교하면 3배 이상에 이른다. 최씨는 “단골들은 ‘여름에도 어묵을 팔아달라’고 하지만, 더운 날씨에 어묵을 팔면 매장 온도가 크게 올라가 팔 수가 없다”며 “어묵을 파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의 가게는 동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수행한다. 매일 오후 5시10분엔 인근 ‘샤시공장’에서 일하는 남성 3명이 이곳을 찾는다. 그들이 올 때쯤 미리 어묵 9개를 꺼내 대나무 발 위에 올려둔다. 1인당 정확하게 어묵꼬치 3개씩을 먹는다고 한다. 최 경영주는 “‘엄마, 국물 좀 더 주세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다”고 했다.
최 경영주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한다. 매일 담배 2갑을 사고 어묵 6개를 먹는 단골부터 아침·저녁 어묵 포장 손님까지 모두가 아들·딸처럼 보인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충성 소비자다. 필리핀·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온 이들은 최 경영주를 ‘이모’라고 부른다. 어묵을 포장하면서 양념을 한가득 챙겨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 최 경영주는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게 비법”이라고 말했다.
진천=글·사진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