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님과 그렇게 긴 대화를 나눈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타고 내릴 때 짧은 인사를 제외하면 기사님과 두 마디 이상 나누는 일이 드문데, 그날은 첫인사만 다섯 마디가 넘은 것 같다. 기사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이냐’는 물음에서 시작해 물 흐르듯 자신의 일상과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지방살이를 시작했고, 사위는 자신과 입맛이 정반대이고, 아내는 주말마다 등산을 갈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이렇게 많은 개인정보를 알려주셔도 되나 싶을 정도로 ‘투 머치 토커’인 기사님을 보며 괜스레 웃음이 나던 차에 깜짝 놀랄 정보가 추가됐다. “제 나이가 올해로 77세거든요.”
시선을 창밖에 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룸미러에 비친 이마에는 옅은 주름만 보였다. 염색을 하셨는지 머리카락도 검고 빽빽했다.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에는 70대라는 나이를 상상하기 어려운 활기가 있었다. 기사님은 스스로 나이를 밝혀놓고 ‘노인 운전기사’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걱정됐는지 매년 건강검진 조건을 통과해야 택시업을 할 수 있다는 둥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젊은 시절 자신이 운동선수였으며 지금도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는 말도 더했다. “이 일을 나도 작년까지만 할까 고민했었는데 집에만 있으면 뭐해요. 스스로 밥벌이해서 집에 1000원이라도 더 가져다주는 거, 그게 제 낙입니다. 제 아내도 70이 넘었지만 아직 간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자식들도 신기하다고 해요.”
생애가 100년이라면 10분의 7 이상을 달려온 그는 여전히 더 일하고 싶다고 했다. 문득 지난해 고령자 계속고용 문제를 취재하면서 인터뷰했던 60세 정년 퇴직자의 목소리가 겹쳤다. 번듯한 직장에서 30년을 일한 A씨는 회사를 나온 지 3개월 만에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에 시작한 구직이 겨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고령자 일자리는 대부분 계약직이다. 자영업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 매년 구직활동을 지속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집에만 있으면 뭐하나요. 경제적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주위에서도 회사에서 나온 뒤에 ‘쉬어야지’ 하는 사람은 없어요.” A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고령층의 70% 정도는 계속 일하기를 원하고, 이들이 희망하는 실질 은퇴 연령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조사 결과는 73.3세였다.
한국은 지난해 말 국민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6년 뒤인 2031년에는 국민 절반이 50대 이상이다. 올해부터 기록적으로 많은 아이가 태어난다 해도 이들이 경제활동을 하기까지 상당 시일이 걸리기에 우리는 정해진 미래를 걸어갈 수밖에 없다. 2044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6.7%로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된다. 2030년에 합계출산율이 1.0을 회복하더라도 207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가 지금 수준의 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는 법정 정년 연장과 퇴직 후 재고용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로 요약된다. 한쪽을 먼저 도입하든, 두 가지를 결합하든 구체적인 계속고용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더불어 ‘고령자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우리 사회가 나눠 보았으면 좋겠다. ‘고령자에 맞는 근로 환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 문제다. 적어도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일하고 싶은 고령자’들은 세금으로 만든 단순 노동이 아닌 사회경제적 인적 자원으로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고 있었다.
경제 허리인 40대에도 들어서지 못한 내가 은퇴나 노후를 걱정하는 건 섣부른 걱정일지 모른다. 다만 택시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의 바람이 나의 부모님, 나의 가족 일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속도만큼 준비 없이 생애 중반부에 ‘정글’로 내몰리는 고령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더 일할 수 있고 더 일하고 싶다는, 노인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지고 무시하기 어려운 사회 현상이 될 거란 예감이 든다. 그렇기에 이토록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도 이 시대적 과제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조금 느리지만, 우리가 분명 답을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