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사랑받으면 성과를 내게 돼 있다. 사랑받는 게 기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사랑받는 기쁨을 알게 해 준 사람이 있다. 내 아내 김현정 권사다.
어느 스포츠 기자가 “김현정 없는 최경주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맞다. 김 권사는 나에게 로또이자 선물 같은 사람이다. 오직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 어떤 어려움도 묵묵히 견디는 사람, 내가 골프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잡다한 모든 것을 짊어진 사람이다. 지금도 아내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해낸다. 아내, 엄마, 친구, 누나….
나는 나쁜 남자에 가까웠다. 연애하던 시절, 연습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찾아오지도 못하게 했다. 데이트하다가도 연습할 시간이 되면 주저 없이 “연습해야 하니까 이제 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뿐만인가. “일요일에 같이 예배드리면서 얼굴 보면 됐지. 괜히 오지 마. 연습에 방해되니까.” “영화는 친구들하고 봐, 난 운동해야 해.”
결혼 후에도 철저히 내 위주로 생활했다. 아내는 산후조리조차 혼자 했다. 서운할 법도 한데 오히려 내게 필요한 격려와 조언을 아낌없이 해줬고 막연하기만 했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언젠가 왜 나와 결혼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는 “당신 곁에서 당신을 돕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인 줄 알았죠”라고 답했다.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아내의 기도와 섬김을 먹고 살아왔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신혼 때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아내가 침대 발치에서 내 두 엄지발가락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자는 척하기도 민망하고 누워서 기도한다는 게 낯설어서 다음 날부터는 다리를 펴고 앉아서 기도를 받았다. 누웠을 때는 몰랐는데 앉고 보니 아내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여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이 날 위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걸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아내에게 발가락 대신 손을 내밀었다. 마주 보고 앉아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했다. 기도라는 걸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날이었다.
아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 대회장에 갤러리가 아무리 많아도 내 사람은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배낭을 메고 허리를 약간 숙인 채 천천히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시장통에서 정신없이 놀던 어린아이가 엄마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아내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중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도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힘과 믿음이 생긴다.
아내의 기도. 지금의 최경주를 만든 비밀병기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