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방검복 착용

입력 2025-01-24 00:40

해외에서 정치인들이 방탄복을 입는 경우는 흔하다. 에콰도르에선 2023년 8월 야당인 ‘건설운동’의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대선 후보가 괴한의 총격으로 숨진 일이 있었다. 이후 정치인들은 방탄복은 물론, 방탄헬멧까지 착용하고 유세를 다녔다. 대만에서도 2004년 총통 선거 때 천수이볜 민진당 후보가 투표 전날 괴한의 피습을 받았다. 그 뒤부터 경찰은 선거 때마다 후보들한테 방탄복 착용을 설득해 왔고, 후보들도 가급적 이를 수용하고 있다. 미국에선 2021년 1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결의안 표결이 있었는데, 같은 공화당 소속 의원 1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가 극우층한테 신변 위협을 받자 한동안 방탄복을 입고 다녀야 했다.

남의 나라 얘기 같았던 풍경이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만 한국에선 총기 위협은 거의 없어 방탄복 대신 방검복이 화제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당 회의 도중 방검복을 꺼내 들었다. 최근 야당 의원들한테 테러 위협이 많아져 몇몇 의원들이 실제로 양복 안쪽에 받쳐 입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이재명 대표한테도 옷을 소개했고 이 대표는 상시 착용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 의원 본인은 무술이 뛰어나 팔로 흉기를 쳐낼 수 있게 양쪽 팔에 방검토시만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방검복은 정치적 견해를 둘러싼 진영 갈등이 얼마나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상대에게 비난이나 막말을 하는 수준을 넘어 흉기로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고, 진짜 테러를 당할까 걱정돼 방검복까지 입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최근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건 역시 그런 극단적 갈등의 또 다른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테러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협박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엄단해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여야 정치권도 그간 대립의 씨앗을 앞장서서 뿌리며 지금의 세태를 조장해 온 것은 아닌지 깊이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