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역 6번 출구 앞에 주름이 깊게 팬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구겨진 상자와 신문지를 보물처럼 품에 안고 있었다. 해진 옷부터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서 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둘 어르신들이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나섰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사랑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생명 꾸러미’ 350여개를 노숙인들 손에 일일이 건넸다.
꾸러미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봉사자들은 꾸러미 안에 컵라면과 즉석밥, 두유, 빵을 비롯해 마스크 등 생필품을 담았다.
선물을 받아든 김연호(가명·69)씨는 배가 고팠는지 곧장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겨 즉석밥을 뜯었다. 데우지도 못해 차갑고 딱딱한 밥알 위에는 서둘러 라면수프를 뿌렸다.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던 그의 눈가에 불현듯 눈물이 맺혔다. 기자가 다가가자 “명절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다”고 짧게 말했다.
다니엘선교센터(이사장 이은태 목사)가 매주 목요일 영등포역에서 펼치는 사역 현장의 모습이다. 이날은 설 명절을 앞둬서인지 봉사자나 노숙인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센터는 영등포역 외에도 월요일마다 수원역 정나눔터에서 노숙인과 인근 노인을 위해 먹거리와 생필품 꾸러미를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매주 500여명이 센터의 손길과 닿는다.
사역은 비단 생명 꾸러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선물을 전하기 이전 10~20분 정도 예배를 드리며 복음도 전한다. 이날도 이은태 다니엘선교센터 이사장이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요한복음 14장 6절을 인용하면서 “아무리 부유하고 좋은 환경에 있을지라도 바른길에 가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면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 가는 길에 동행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역은 2019년부터 시작했다. 30여년간 뉴질랜드에서 선교사로 일하며 노숙인을 도왔던 이 이사장이 귀국 후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노숙인 사역을 시작했다.
박갑도 다니엘선교교회 목사는 “2000여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펼친 사역이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먹이고 입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며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건 주님의 종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봉사자들은 몸이 불편해 직접 참석하지 못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쪽방촌 심방도 나서 이불과 겨울옷을 선물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봉사자들은 주민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기도했다.
쪽방촌에 사는 김미향(가명·75)씨는 “다리를 다쳐 거동이 힘들지만 목사님의 기도를 받을 때만큼은 힘이 난다”며 “곧 설이라 쓸쓸했는데 이렇게 찾아 주시니 온기와 정을 느낄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반색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